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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공개)/詩,노래하는 웅녀

백거이- 비파행(琵琶行, 비파의 노래)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6. 10. 4.





 

비파행(琵琶行, 비파의 노래)


백거이(白居易,白樂天, 772년~846년, 당나라)

김원중 옮김, 문태준 설명

 

 

심양강(潯陽江) 가에서 밤에 나그네를 배웅할 때

단풍잎 갈대꽃 위로 가을바람 소슬하다.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 안에 있어

술잔 들어 이별주를 마시려 해도 풍악이 없구나.

취한 마음 기쁘지 않고 이별의 슬픔만 처절한데

헤어질 때 망망한 강에는 달빛만 어려 흐른다.

홀연 강물 위에 비파소리 들려오니

주인은 돌아올 것 잊고 나그네는 떠나가지 않았다.

소리를 찾아 타는 이 누군가 몰래 물었으나

비파 소리만 끊기고 말은 머뭇머뭇

배를 옮겨 서로 가까이 가서 만나 달라 요청하며

술 더하고 등불 돌려 다시 주연을 베푸네.

천 번 만 번 불러서야 겨우 나왔건만

여전히 비파 안고 얼굴 반을 가리고 있다.

축(軸)을 돌려 두세 번 줄을 퉁기니

곡도 타지 않은 소리건만 벌써 정(情)이 담겼네.

 

  

 

   





줄마다 억누르듯 타니 소리마다 애틋하여

마치 한평생 못다한 뜻을 호소하는 듯하다.

눈썹 떨구고 손 가는 대로 이어서 퉁기고

가슴 속에 사무친 무한한 정(情)을 덜어놓는 듯하다.

가볍게 눌렀다가 살짝 꼬집듯이 눌렀다가 둥둥 퉁기며

처음에는 「예상우의곡(預裳)」을 타고 뒤이어 「육요(六么)」를 연주하니

굵은 줄은 조조하게 소나기 내리는 듯하고

가는 줄은 절절히 속삭이는 듯하다.

조조 절절 엇섞어 연주하니

크고 작은 진주가 옥쟁반에 떨어져 구르는 듯하네.

꽃 사이를 나는 앵무새 노래같이 부드럽다가

얼음 밑 흐르는 개울물같이 목메어 흐느끼듯

물줄기 차갑게 얼어붙은 듯 줄이 끊어지며

굳어버린 비파는 소리 내지 못하고 잠시 죽은 듯

새삼스레 가슴 깊이 묻혔던 슬픔과 원한이 복받치는 듯

이 순간 소리가 없음은 소리보다 낫다.

은 항아리 홀연 깨지고 술 쏟아지듯

철갑 기병 돌연 나타나 창칼 소리 울리듯

곡이 끝나자 채를 거두어 가슴 앞에 그리고

네 줄을 한 번에 퉁기니 비단 폭 찢는 듯하다.

동쪽 배 서쪽 배에는 숙연히 말이 없고

오직 강물 속 창백한 가을 달만 보인다.

침울히 채를 거두어 줄 가운데 꽂고

옷을 가다듬고 일어나 용모를 바로잡는다.









스스로 하는 말이 본래 경성(京城) 여인으로

하마릉(蝦蟆陵) 아래 살았는데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명성이 교방(敎坊)에서 제일이었고

곡을 끝내면 일찍이 비파의 명수들도 탄복했으며

꾸민 모습에 미녀들의 질투도 받았답니다.

오릉(伍陵)의 젊은이 다투어 예물 내었고

한 곡조마다 붉은 비단 헤아리지 못했어요.

금비녀 은비녀 가락 따라 맞추느라 부서졌고

붉은 비단 치마 술 쏟아 얼룩졌지요.

올해도 즐겁게 웃고 다음 해도 그렇게

가을 달 봄바람 따라 한가히 보냈어요.

남동생 군대 가고 계모 죽고

밤 지나 아침 되니 얼굴색도 시들었더군요.

문 앞 썰렁하고 말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드물어져

나이 들어 시집가 상인(商人)의 아내 되었지요.

상인은 이로움만 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벼이 하니

지난달 부량(浮梁)으로 차(茶) 사러 떠났지요.

강가를 오가며 빈 배 지키는데

배를 감싼 밝은 달빛에 강물은 차갑네요.

깊은 밤 홀연히 소년 때의 일을 꿈꾸어

꿈속에서 우니 화장 섞인 눈물 붉은 뺨으로 흐릅니다.










나는 비파 소리 듣고 이내 탄식했고

또 이 말 듣고 거듭 탄식했네.

똑같이 하늘가(天涯)에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서로 만났으니 지난날을 서로 알아 무엇하리.

나는 지난 해에 장안을 떠나

심양성(潯陽城)에서 귀양 사는 병든 몸이건만

심양은 외진 곳이라 음악도 없어

일 년 내내 관현 소리(絲竹聲) 듣지를 못했네.

사는 곳 분강(湓江) 가에 가까워 땅 낮고 습하니

누런 갈대와 억센 왕대가 집을 에워싸고 자라네.

그 사이에서 아침저녁으로 듣는 소리가 무엇이겠는가.

두견새 피 토하듯 우는 소리 원숭이 애절한 울음소리

봄 강물에 꽃 핀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 밤

때때로 술 사다 홀로 비스듬히 기울였네.

어찌 산 노래(山歌)와 마을의 피리 소리(村笛) 없었으랴만

난잡하고 저속한 소리 듣기 어려웠네.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신선의 음악(仙樂) 듣는 듯 귀가 잠깐 사이에 밝아졌다네.

사양하지 마시고 다시 한 곡 더 타시면

그대를 위해 비파의 노래(琵琶行) 지으리라.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오랫동안 서 있다가

물러나 앉아 줄을 재촉해 점점 빨리 타니

처절하기가 이전 소리 같지 않아

앉아 있는 모든 사람 듣고는 얼굴 묻고 울었네.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눈물 흘렸는가.

강주사마(江州司馬)의 푸른 옷이 흠뻑 젖었네.

  

  

 

*강주사마(江州司馬): 강주(江州) 땅의 군무(軍務)를 맡고 있는 관직.

여기서는 강주사마로 좌천된 ‘백거이(白居易) 자신’을 말한다.








  

*** 백거이(白居易)의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그 역시 술을 좋아했다.

평생동안 약 3,800여 수의 시(詩)를 지었다.

 

 

백거이(白居易)는 간언하는 직위에 있지 않으면서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강주사마(江州司馬)라는 외직으로 쫒겨나게 되는데,

권신들의 비방과 질투도 그의 좌천에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백거이가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할 때,

이웃 노인에게 사전에 들려주어 조언을 구했다거나,..

'소를 치는 아이나 말몰이꾼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렸고,

배나 절의 기둥이나 벽에 써 붙여지기도 했다'고 하니,..

그의 시(詩)가 갖는 민중지향성(民衆指向性)을 잘 알 수가 있다.

 

 

그의 이름인 ‘거이(居易)’는 '편히 산다 (道에 따라 자연스럽게 산다)'는 뜻이며,

‘낙천(樂天)’은 '하늘의 이치에 따른다 (천명天命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그의 시(詩)에는 예리한 사회비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삶의 비애와 감상을 시로 표현하여 상호이해와 화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달관과 초월을 노래하는 시가 많다.

 

  

 


(백거이 白居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