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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3-4.양생주(養生主):노담(老聃)이 죽었을 때 진일(秦失)이 문상하러 가서(老聃死 秦失弔之)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9. 17.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3-4.양생주(養生主)

:노담(老聃)이 죽었을 때 진일(秦失)이 문상하러 가서(老聃死 秦失弔之)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노담(老聃)이 죽었을 때 진일(秦失)이 문상하러 가서(老聃死 秦失弔之)

세 번 곡을 하고는 나와버렸다.(三號而出)

그러자 제자가 물었다.(弟子曰)

 "그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십니까?"(非夫子之友邪)

진일(秦失)이 대답했다.(秦失曰)

 "그래, 친구지."(然)

(제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문상을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然則弔焉若此可乎)

진일(秦失)이 대답했다.(曰)

 "그래도 된다.(然)

처음에 나는 그를 보통의 사람으로 여겼는데(始也 吾以爲其人也)

이제 보니 아니다.(而今非也) 

방금 내가 문상하러 들어가서 보니(向吾入而弔焉)

늙은이는 자기 자식을 잃은 듯 슬프게 울고(有老者哭之 如哭其子)

젊은이는 제 어머니를 여읜 듯 슬프게 울더구나.(少者哭之 如哭其母)

그들이 모여 저렇게 시끄럽게 구는 것은(彼其所以會之)

꼭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必有不蘄言而言)

꼭 울지 않아도 될 울음을 우는 것이다.(必不蘄哭而哭者)

이것은 자연(天)에서 벗어난 것이며,(是遁天)

삶의 실상(精)을 배반하고,(倍精)

타고난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忘其所守)

옛사람은 이를 두고

 '자연(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받게 되는 형벌(遁天之刑)'이라고 했다.(古者謂之遁天之刑)

그가 홀연히 태어난 것은(適來)

때가 되어서 태어난 것이요,(夫子時也)

그가 홀연히 죽은 것은(適去)

죽을 운명에 따른 것이다.(夫子順也)

편안히 때에 따르고(安時)

순리에 맞게 처신한다면(而處順)

거기에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수가 없다.(哀樂不能入也)

옛사람은 이를 두고(古者謂是)

'하느님이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고통을 풀어준다'고 했다."(帝之懸解)




※ '노담(老聃)'은 도가(道家)의 개창자(開創者)인 '노자(老子)'를 말하며, 

공자보다 앞선 인물인 '이담(李聃)'이라고 추정한다.

'진일(秦失)'은 노자(老子)의 친구로 나오는 가공의 인물이다.




※ 진일(秦失)의 제자는 스승의 조문 방식이 인습에서 벗어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슬프게 곡을 하는데

오히려 고인의 친구인 진일(秦失)은 세 번 울고는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진일(秦失)은 말한다. 

(사실은 진일秦失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서 장자莊子가 말하는 것이다.)

자신은 친구인 노담(老聃)이 세속의 보통 사람(人, 衆生)인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아니었다. 그는 지극한 경지에 있었던 사람, '지인(至人)'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모여서 노담(老聃)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을 하지만,

노담(老聃) 자신은 결코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삶과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를 문상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친구인 노담(老聃)의 뜻과 가르침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본래의 세계, 자연의 세계(無爲自然)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다.

오직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연의 세계(天, 無爲自然), 자연의 道'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我相, 에고, 假我)'라는 관념이 생기고

차별심과 집착이 생기면서

'삶과 죽음'이란 관념이 나타난다.


나의 삶과 죽음, 너의 삶과 죽음,

또 우리의 삶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결국엔.. 마침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인간의 비극(悲劇)'은 여기서 시작된다.

 



※ 그래서 장자(莊子)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비극(悲劇)을..

사람이 '자연(天, 無爲自然)의 道'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받게 되는 형벌이라고..

즉 '둔천지형(遁天之刑)'이라고 말한다.



'둔천지형(遁天之刑)'은.. 사람이..

'삶과 죽음의 실정(본래의 세계, 자연의 세계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다는 진실)'을 

배반한 것에 대한 벌이며,(倍精)

 그 '타고난 운명(생겨난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오직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순환만이 있을 뿐이다)'을

잊어버린 것에 대한 벌이다..(忘其所守)


그것은 마치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이()' 고통스럽다.



'현()'은 '머리를 매달다, 목을 베다, 거꾸로 매달다'는 뜻이니,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형벌이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을 의미한다.


즉, 장자(莊子)에 의하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그토록 울고 불고 하며 큰 슬픔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 본래의 세계(天), 자연의 道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형벌이며, 

울고 불고 하는 모습 자체가 '벌 받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본래의 세계, 자연의 道'와 하나된 사람의 모습은 어떠한가?



진일(秦失)도 노담(老聃)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 번 울었다. 그러나 슬픔으로 자기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진일(秦失)은 '안시이처순(安時而處順)'의 경지에서 사는 사람이다.


'편안히 때에 따르고(安時)

자연의 순리에 따라 처신하는 것(處順)'은..

 

'중정(中正)'과 함께

양생의 道를 깨친 사람의 삶의 자세이며, 참된 삶의 모습이다.



때어날 때가 되어서 태어난 것이고, 

죽을 운명이 되어서 죽는 것이다,

다만 삶과 죽음을 통해서 

'순리(順利)',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순환에 묵묵히 동참할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쁨과 슬픔이 끼어들어와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잠시 그에게 와서 머물다가 다시 떠나갈 뿐이다. 

   

 


※ '해(解)'는 '풀어버린다, 해방된다'는 뜻이니,

'중정(中正)'과 '안시처순(安時處順)'을 통한.. 

 자유(自由)와 해탈(解脫)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하느님(天帝, 天, 自然)이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고통을 풀어주는 것'과 같다.(帝之懸解)




※삶과 죽음에 대한 장자(莊子)의 생각..

혹은 도가(道家)의 철학적 입장은 『장자(莊子)』의 「지락편(至樂編)」에서 잘 드러난다.



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惠子)가 문상하러 갔더니

장자(莊子)가 다리를 뻗고 앉아서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惠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까지 키우고

함께 늙어가다가 그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텐데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莊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이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처음을 살펴보았더니

본래 삶이 없었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氣)조차 없었네.

황홀한 가운데 섞여서 변화하여

기(氣)가 있게 되고,

기(氣)가 변화하여 형체가 되고,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게 되었네.

그러다가 지금 또 변화하여 죽음으로 갔으니,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네.

저 사람이 천지(天地)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울어댄다면

이는 스스로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울기를 그만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