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3-1.양생주(養生主)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吾生也有涯)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양생주(養生主)'란?
'양생주(養生主)'는 '생명, 삶을 기르는 주인'이다.
여기서 주인(主)은 '참 주인(眞君)'이며, '참 주재자(眞帝)'다.
천지만물은 모두 자연(自然)에 의지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자연(自然)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생명, 삶을 기르는 참 주인(養生主)'은
사람이 아닌 자연(自然)이다.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다.
이 道는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하는 도리'이니,
다른 말로 하면 '양생(養生)의 道'이며,
'중정(中正,督)의 道'다.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吾生也有涯)
앎은 무한하다.(而知也無涯)
유한한 삶을 살면서 무한한 앎을 추구한다면(以有涯隨無涯)
위태로울 뿐이다.(殆已)
그래서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따름이다.(已而爲知者 殆而已矣)
좋은 일을 하여 명예를 가까이 하지 말고(爲善無近名)
나쁜 일을 하여 형벌을 가까이 하지 말라.(爲惡無近刑)
오직 '중정(中正, 督)'을 따르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緣督以爲經)
몸을 보존할 수 있고(可以保身)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可以全生)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으며(可以養親)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可以盡年)
※ 장자(莊子)는 선(善)과 악(惡)을 거의 같은 것으로 본다.
선(善)과 악(惡)은 '사람의 관점, 입장'으로 자연을, 천지만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는 선(善)과 악(惡)이 없다.
장자(莊子)는 참된 양생(養生)의 道는
'중정(中正)의 바르고 자연스러운 길'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가(道家)의 '중정(中正)'은
불가(佛家)의 '중도(中道)', 유가(儒家)의 '중용(中庸)'과 거의 같은 뜻이니,
알고보면 고대인(古代人)들의 道와 깨달음의 뿌리는 바로 '중정(中正)'에 있다.
※ 중정(中正)은 선한 길도 악한 길도 아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마라.
악한 일을 피하려고 애쓰지 마라.
이것은 모두 삶에 욕심을 내어 '이득을 좇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연의 道는 선하지도 않으며 악하지도 않다.
그것은 다만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일 뿐이다.
사람은 자연(自然)의 道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유한한 존재인 사람은 '무한한 자연(自然)'을 알 수가 없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 '무한한 자연(自然)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혹은 무한한 자연(自然)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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