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3-2.양생주(養生主)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았다.(庖丁爲文惠君解牛)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양생주(養生主)'란?
'양생주(養生主)'는 '생명, 삶을 기르는 주인'이다.
여기서 주인(主)은 '참 주인(眞君)'이며, '참 주재자(眞帝)'다.
천지만물은 모두 자연(自然)에 의지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자연(自然)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생명, 삶을 기르는 참 주인(養生主)'은
사람이 아닌 자연(自然)이다.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다.
이 道는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하는 도리'이니,
다른 말로 하면 '양생(養生)의 道'이며,
'중정(中正,督)의 道'다.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庖丁爲文惠君解牛)
그의 손이 소의 몸에 닿고, 어깨로 소를 받치고(手之所觸 肩之所倚)
발로 소를 밟고, 무릎으로 누르는 몸놀림이나(足之所履 膝之所踦)
'쓱싹쓱싹'(砉然響然)
칼을 쓸 때마다 내는 '싹싹 쉭쉭' 하는 소리가(奏刀騞然)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莫不中音)
그 몸놀림은 '상림(桑林)'의 춤에 어울리고(合於桑林之舞)
그 칼 쓰는 소리는 '경수(經首)'의 리듬에 들어맞았다.(乃中經首之會)
문혜군(文惠君)이 이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文惠君 曰)
"아아, 참으로 좋구나!(譆 善哉)
과연 기술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 것인가?"(技蓋至此乎)
포정(庖丁)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庖丁釋刀對曰)
"제가 좋아하는 것은 道이며,(臣之所好者 道也)
기술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進乎技矣)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적에는(始臣之解牛之時)
보이는 것이 소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所見無非牛者)
삼 년이 지나자(三年之後)
통 채의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未嘗見全牛也)
지금 저는 마음(神, 신명, 神目)으로 소를 대할 뿐(方今之時 臣以神遇)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而不以目視)
오관(五官, 오감각)의 작용을 멈추고(官知止)
마음(神, 신명,神目)을 따라서 움직입니다.(而神欲行)
'자연스러운 본래의 이치(天理, 자연의 결)'에 따라서(依乎天理)
큰 틈새를 치고 큰 구멍으로 칼을 찌릅니다.(批大䧍 導大窾)
소가 생긴 그대로의 모양을 따라서 칼을 쓰는 것 뿐입니다.(因其固然)
(칼이) 힘줄이나 질긴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 지나가니(技經肯綮之未嘗)
하물며 큰 뼈에야 부딪치겠습니까?(而況大軱乎)
솜씨있는 백정이라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良庖歲更刀)
힘줄을 자르기 때문입니다.(割也)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族庖月更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折也)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은 십구 년이 되었으며(今臣之刀 十九年矣)
그 동안 잡은 소는 수천 마리가 됩니다.(所解 數千牛矣)
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갈아내온 것 같습니다.(而刀刃若新發於硎)
(소의) 뼈 마디 사이에는 틈새가 있고(彼節者有間)
칼날 끝에는 두께가 없습니다.(而刀刃者無厚)
두께가 없는 것을 틈새에 집어넣으니 널찍하여(以無厚入有間 恢恢乎 )
칼날을 놀리는데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其於遊刃 必有餘地矣)
그래서 십구 년이 지나도록(是以十九年)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갈아놓은 것과 같습니다.(而刀刃若新發於硎)
비록 그렇다 해도 뼈와 살이 엉긴 곳을 만날 때마다(雖然 每至於族)
저는 그것이 처리하기 어려움을 알고(吾見其難爲)
두려워하며 조심합니다.(怵然爲戒)
눈길을 그 곳에 두고(視爲止)
몸놀림은 느려지고(行爲遲)
칼놀림은 아주 미세해집니다.(動刀甚微)
(제가) 재빠르게 소를 가르면(謋然已解)
소의 뼈와 살이 흙덩이처럼 땅 위에 쏟아집니다.(如土委地)
그제야 저는 칼을 들고 서서(提刀而立)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머뭇거립니다.(爲之四顧 爲之躊躇)
흡족한 마음이 들면 칼을 잘 닦아 보관합니다."(滿志善刀而藏之)
문혜군(文惠君)이 말했다.(文惠君曰)
"좋구나!(善哉)
나는 포정(庖丁)의 말을 듣고서 양생의 道를 깨달았다."(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 포정(庖丁)은 '요리사, 백정(庖)'이라는 직업과
부역이나 군역에 소집되는 사내를 의미하는 '정(丁)'을 합친 말이다.
옛날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직접 소나 돼지를 잡았다.
포정(庖丁)은 불가촉 천민(不可觸賤民)인 백정이다.
그런 그가 왕(王) 앞에서 소를 잡으며 '양생의 道'를 알려준다.
가장 낮은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의 스승이 되어 道를 전하는 것,
이것이 '장자(莊子)의 해학'이다.
여기서 문혜군(文惠君)은 춘추전국시대의 양(梁)나라 혜왕으로 본다.
※ 소를 잡는 포정(庖丁)의 동작과 소리가 어우러져
뛰어난 춤과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고대(古代)의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춤곡, '상림의 춤(桑林之舞)'에 맞춰서 춤추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한 그의 칼소리가 고대의 황제(黃帝)가 짓고 요(堯)임금이 때에 맞게 수정했다고 하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음악인 '함지(咸池)'의 한 악장,
'경수의 리듬(經首之會)'에 딱 들어맞았다고 한다.
'상림지무(桑林之舞)'와 '경수지회(經首之會)'는 모두 완벽한 춤과 음악을 상징하는 것이니,
그만큼 포정(庖丁)의 칼 쓰는 동작과 소리가
조금의 무리나 억지도 없이 완벽했다는 것이다.
※ 맨 처음 포정(庖丁)이 소를 잡을 때는 道(天理)는 보이지 않고
道를 자신 안에 감춘 '소(사물의 형상)'만 보였다고 한다.
그는 아직 마음의 눈(神, 신명)을 뜨지 못해서
오직 감각기관(感官)을 통해서만 소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는 소의 생김새(사물의 형상)에 집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추구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道였기 때문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道(天理)를 찾아 헤맨 끝에 3년 만에
소를 더 이상 '눈(感官, 감각기관)'으로 보지 않고
'마음(神, 신명)'으로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그는 왕 앞에서
'마음(神, 신명)'을 따라 움직이며(神欲行)
'본래의 자연스러운 이치(天理, 자연의 결, 리듬)'에 따라(依乎天理)
소를 잡는 道의 경지를 보여주니,
다만 그것이 뛰어난 춤과 소리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 '리(理)'는 왼쪽 부수글자가 옥(玉)이며, '옥의 결'을 의미한다.
훗날 그 의미가 '결, 리듬, 이치'로 발전했는데,
'리(理)'자 앞에 어떤 사물을 붙이면 '그 사물의 이치(理)'라는 뜻이 된다.
천리(天理)는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이며,
물리(物理)는 '사물의 이치, 물성의 이치'이며,
도리(道里)는 '道의 이치'이다.
여기서 포정(庖丁)이 말하는 '천리(依乎天理)'는
'자연의 결, 자연의 이치'이니,
바로 '소가 가진 본래의 모습, 타고난 몸의 구조, 소의 이치'를 말한다.
※ 그는 뼈 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것(無厚, 無爲)'으로
'틈새가 있는 곳(有間, 虛)'을 자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칼은 아무리 잘 벼리어도 두께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께가 없는 칼날'이란
숫돌에서 방금 갈아낸 듯한 예리한 칼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위(無爲)의 칼날'이다.
자기를 비우고 대상조차 의식하지 않고
일에 온전히 몰입하여
자연의 결, 자연의 리듬, 자연의 이치(律呂, 天理)에 따라서 일하는 것은
'무위로써 일하는 것(爲無爲)'이다.
그 순간만큼은 '일하는 나(我, 주체, 포정)'도 없고,
'일하는 대상(彼, 객체, 소)'도 없다.
피아일체(彼我一體), 주객일체(主客一體)의 '道의 세상'이 열린다.
거기에 '나(我)'라는 것은 없다.
※ 그렇게 '깊은 몰입'을 통해서
소를 가르고 완전히 해체시킨 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오히려 나와 세계 사이에 생긴 '낯선 경계'가 익숙치 않아
잠시 칼을 들고 멍하니 서서 머뭇거리게 된다고 한다.
이윽고 사방을 둘러보고 자신이 한 작업에 흡족한 마음이 들면
칼을 잘 씻어서 보관한다.
그렇게 포정(庖丁)은 소 잡는 일을 통해서 '천리(天理)'를 터득했다.
자기를 비우고
자연의 이치대로 일하며 살아가는 법(無爲自然)을,
삶을 온전히 기르는 법(養生)을 터득한 것이다.
'물의 방(老莊) > 장자 내편(莊子內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3-4.양생주(養生主):노담(老聃)이 죽었을 때 진일(秦失)이 문상하러 가서(老聃死 秦失弔之) (0) | 2017.09.17 |
---|---|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3-3.양생주(養生主):공문헌(公文軒)이 우사(右師)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公文軒見右師而驚曰) (0) | 2017.09.12 |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3-1.양생주(養生主):나의 삶은 유한하지만(吾生也有涯) (0) | 2017.08.29 |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2-18.제물론(齊物論):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昔者莊周夢爲胡蝶) (0) | 2017.08.26 |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2-17.제물론(齊物論):망량(罔兩)이 그림자(景)에게 물었다.(罔兩問景曰) (0) | 2017.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