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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2-14.제물론(齊物論):구작자(瞿鵲子)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瞿鵲子問乎長梧子曰)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7. 31.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2-14.제물론(齊物論)

:구작자(瞿鵲子)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瞿鵲子問乎長梧子曰)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구작자(瞿鵲子)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瞿鵲子問乎長梧子曰)

"제가 공자(夫子)에게 들기를,(吾聞諸夫子)

'聖人은 세상 일에 애쓰지 않고(聖人不從事於務)

이로움을 좇지 않고(不就利) 

해로움을 피하지 않고(不違害)

구하여 얻는 것을 즐기지 않고(不喜求)

道에 매이지 않는다.(不緣道)

말하지 않고 가르치고(無謂有謂)

말하면서 말이 없어서(有謂無謂)

속세의 티끌 밖에서 노닌다'(而游乎塵垢之外)

이와 같은 말은 모두 맹랑한 말이라고 합니다.(夫子以爲孟浪之言)

하지만 저는 오묘한 道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而我以爲妙道之行也)

선생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吾子以爲奚若)



장오자(長梧子)가 대답했다.(長梧子曰)

"그 말은 황제가 들어도 어리둥절할 얘긴데(是黃帝之所聽熒也)

공자(丘)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而丘也何足以知之)

자네도 너무 성급했네.(且汝亦大早計)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見卵而求時夜)

활을 보고 올빼미 구이를 찾는 것과 같네.(見彈而求鴞 ) 

내가 시험삼아 자네를 위해 망령되이 말할테니(予嘗爲女妄言之)

자네도 역시 망령으로 들어주게.(汝以妄聽之奚)

聖人은 해와 달과 어깨동무하고(旁日月)

넓은 우주를 겨드랑이에 끼고서(挾宇宙) 

만물과 하나된다네.(爲其脗合)

몸을 혼돈(滑混)에 맡겨두고(置其滑混)

노예처럼 남을 높인다네.(以隸相尊)

세상 사람은 수고로이 애쓰지만(衆人役役)

聖人은 어리숙하여(聖人愚鈍)

삼만세를 한결같이 순수하다네.(參萬世而一成純)

만물이 모두 그러하니(萬物盡然)

이처럼 계속되어 간다네.(而以是相蘊)




※ 여기서 장오자(長梧子)는 상고시대의 현인이며, 구작자(瞿鵲子)의 스승이다.

그 이름으로 볼 때 스승 장오자(長梧子)는 커다란 오동나무처럼 '道를 깨달은 사람'이다.

제자인 구작자(瞿鵲子)는 까치가 마구 지저귀는 것처럼 말 많고 아직 덜 익은 사람이다.



한편 동양 고전에서 '구(丘)'라는 이름이 나오면 보통 '공자(孔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실제로 공자가 그런 말을 했건 안했건 간에..

여기서 '선생(夫子)'은 '공자(孔子)'라고 보는 것이 맞다.

 

즉, 구작자(瞿鵲子)에게 '聖人의 일'을 말해주고 

그것이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말(孟浪之言)'이라고 한 사람은 공자(孔子)가 된다.



 이후에도 『장자(莊子_』에는 공자(孔子)가  몇 번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데..

때로는 지혜로운 스승으로,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고대(古代) 동(東)아시아의 사상사(思想史)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는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경쟁적이면서 동시에 협조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 먼저 구작자(瞿鵲子)가  뭔가 상당히 감동을 받은 듯 흥분해서 말을 시작한다.


"선생님, 제가 우연히 공자(孔子) 선생에게 듣기를,

'세상의 일(務)'이란.. 욕심 또는 의욕을 내어 작위적으로 계획하고

강제성을 띄고 의식적으로 추진하는 일(務)들이 대부분인데..

聖人은 이런 '세상의 일(務)'에 애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로움을 좇고 해로움을 피하려고 전전긍긍 하지 않고

무엇을 구하여 얻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道에도 얽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말하지 않고도 가르치며,

말하면서도 말이 없어서

말(言語)의 속박과 장애를 받지 않으니, 

티끌 세상의 밖에서 노니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공자(公子) 선생은 이런 말들이 사실 모두 맹랑하고 실없는 소리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저는 이것이 훌륭한 道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그런데 스승인 장오자(長梧子)는 제자의 그런 감동에 쉽게 동의해 주질 않는다.

스승은 다소 냉담하게 대답하기를...


"그와 같은 聖人의 지극한 경지는 

고대(古代)의 聖人인 황제(黃帝) 헌원이 들었어도 알 수가 없고 그저 어리둥절할텐데,

하물며 공구(孔丘)가 어찌 알겠느냐?

그것은 '알 수가 없는 지극한 경지'이다.

너 또한 너무 성급하게 '오묘한 道'니 어쩌니 하고 말하지만,

그러한 경지는 아직 네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가 낙담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시험삼아 망령되이 '허튼소리(妄言)'를 한번 해 볼테니,

너도 내 말을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어라.

내 '말(言)'에 매여서 그와 같은 경지를 감히 '안다,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장오자(長梧子)는 지극한 경지,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말(言)을 통해서 '알음알이(理解)'로 아는 것을

감히 '안다(覺, 깨달음)'고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미리 경고한다.




장오자(長梧子)의  '허튼소리(妄言)'는 이렇다.


聖人은 해와 달과 어깨동무하고 넓은 우주를 옆구리에 낄 만큼 가늠할 수 없이 큰 존재다.  

왜냐하면 聖人은 '만물(萬物)과 이미 하나된 존재'이기 때문이다.(爲其脗合)


해와 달과 우주 만물과 聖人이 이미 '하나(一,道)'이기 때문에

해와 달이 나이며, 내가 해와 달이다.

우주와 만물이 나이며, 내가 우주와 만물이다.


그 지극한 경지에서는 우주 만물이 평등(平等)하며, 제물(齊物)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차별이 없다.

차별이 없기 때문에 '혼돈(滑混)의 상태'다.


여기서 '혼돈(滑混)'은 무(無)이며, 허(虛)이며, 중(中)이며,

道이며, 태극(太極)이니,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바로 聖人은 그 '혼돈(滑混)'에 몸을 맡겨둔다.(置其滑混)

우주 만물이 차별이 없는 상태에 자신을 맡겨둔다.


그리고 가장 낮은 사람, 마치 노예처럼 상대를 높인다.

그렇게 우주 만물을 높이고 사랑한다. (以隸相尊)


여기서 노예(隸)는 가장 낮은 자리, 바로 道의 자리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새로운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차별없는 道의 세계'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욕심을 갖고 경쟁심을 갖고 만든 '차별적인 세상'에서..

남보다 더 이로움을 얻고  더 훌륭해지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며 수고로이 애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소비한다.(衆人役役)



그러나 聖人은 '바보'같아서(聖人愚鈍)..

영원토록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차별없는 세상(滑混, 道)'에 몸을 맡기고 

한결같이 순수함을 지켜나간다.(參萬世而一成純)



알고보면...  聖人뿐만 아니라 만물(萬物)이 모두 그러하다.

만물(萬物)이 모두 '차별없는 道의 세상'에서..

 순수함을 지키며 영원토록 계속되어 간다.(而以是相蘊)



오직 다만 욕심을 버리지 못한 중생(衆生)만이..

 진리에서 벗어나 순수함을 잃고

전전긍긍하며 고통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