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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2-15.제물론(齊物論):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8. 3.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2-15.제물론(齊物論)

: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장오자長梧者가 계속 말하기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

삶을 좋아하는 것이 미혹한 일이 아닌 줄을.(說生之非惑邪)

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헤매는 것이 아닌 줄을.(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여희(麗姬)는 애(艾)땅의 국경을 지키는 관리의 딸이었는데(麗之姬 艾封人之子也)

진(晉)나라에서 처음 그녀를 데려갈 때에는(晉國之始得之也)

옷깃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지만,(涕泣沾襟)

왕(王)의 처소에 들어가 왕과 함께 침상을 쓰고(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牀)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食芻豢)

전에 울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하지.(以後悔其泣也)

그러니 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

죽은 사람이 처음에 살기만 바라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를.(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



꿈 속에서 즐겁게 술 마시던 사람이(夢飮酒者)

아침에는 곡하며 울기도 하고, (旦而哭泣)

꿈 속에서 슬피 울던 사람이(夢哭泣者)

아침에는 즐겁게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네.(旦而田獵)

한참 꿈을 꾸고 있을 때는(方其夢也)

그것이 꿈인줄 알지 못하지.(不知其夢也)

꿈 속에서 또 그 꿈에 대한 점을 치다가(又占其夢焉)

꿈을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인줄 안다네.(覺而候知其夢也)

크게 깨달은 뒤에야 (且有大覺)

비로소 삶이 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네.(而後知此其大夢也)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깨어있다고 생각하고(而愚者自以爲覺)

버젓이 아는 체를 하며(竊竊然知之)

임금이니 목동이니 하는데 다 고루한 일이라네.(君乎 牧乎 固哉)

공자도 자네도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요,(丘也 與女皆夢也)

자네에게 꿈 얘기를 하는 나도 역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네.(予爲女夢 亦夢也)

사람들은 이런 말을 '괴이하다(弔詭)'고 하지.(是其言也 其名爲弔詭)

그러나 만년 뒤에라도(萬世之後) 

이 말의 참 뜻을 아는 큰 聖人을 한번 우연히 만난다면(而一遇大聖知其解者)

아침에 헤어져서 저녁에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네."(是旦暮遇之也)




※ 사람이 가진 고정관념 중에서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보통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평소 '고정관념 깨기'를 즐겨하는 우리의 장자(莊子)선생은 여기서 되묻는다.



"혹시 사람이 삶을 좋아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혹시 사람이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떠나온 고향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갈 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짓이 아닐까? 

혹시 이미 죽은 사람이 자신이 살려고 그토록 발버둥친 일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물론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막상 부딪히게 되면 

자신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 장자(莊子)는 인간의 삶(人生)이란 '긴 꿈(大夢)'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현상, '죽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모두 '하나의 꿈(夢)'이라는 것이다.

이 '꿈 이야기'는 뒤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에서 매우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사람은 '꿈에서 깬 뒤에야(大覺)' 비로소 그것이 꿈인 줄을 안다..(覺而候知其夢也)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고

실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데..)


욕심껏 좋은 운수를 바라며 꿈 속에서 꿈에 대한 점을 쳐 보기도 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웃기도 울기도 한다.

꿈 속에서 도둑을 만나 쫓기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고 배신도 당한다.

남과 다투고 서로 죽고 죽이기도 한다.


그렇게 꿈 속에서 때로는 영웅호걸이 되어 강호를 누비기도 하고

때로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때로는 낙오자, 행려병자(行旅病者)가 되어 삶을 마치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 

꿈 속에서 '흥, 나는 인생의 진실을 좀 알지, 나는 제대로 멋지게 사는 법을 잘 알지! '

그렇게 잘난 체를 하면서..

  '아, 저 분은 고귀하신 임금님이시다!',

혹은 '이 놈은 소 치는 천한 목동이다!'라고 하며

마구 분별심을 내고, 욕심과 차별심을 일으키지만..

꿈에서 깬 사람(大覺者)이 볼 때에는 참으로 어리석고 고루한 일이다.


인생이라는 긴 꿈(大夢)에서 '깨어나면(大覺)'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것(無, 中)'을.. 



그러므로 이미 죽은 사람, 즉 죽음을 통해서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꿈 속에서 자신이 살려고 그토록 애쓰며 발버둥친 일을 후회하지 않는지.. 

아직 꿈 속에 있는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다만 오직 살아서 '꿈에서 깬 사람(大覺者),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覺而候知其夢也)




※ 세상 사람은 '인생이란 긴 꿈(大夢)과 같다'는 말을

참으로 '괴이한 말, 수수께끼 같은 말(弔詭)'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자(莊子)는 오히려 만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이 '수수께기(大夢)'를 풀 수 있는 '대성인(大聖人, 크게 깨달은 사람)'을..

아주 우연하게,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난다면(一遇大聖知其解者)


이것은 마치 '아침에 만나고 저녁에 다시 만나는' 친한 친구처럼, (是旦暮遇之也)

내 마음을 아는 지인(知人)처럼.. 

오히려 자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대각자(大覺者), 대성인(大聖人)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며, 

또한 그만큼 '간절히 만나고 싶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