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2-10.제물론(齊物論)
:道는 본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夫道未始油封)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道는 본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夫道未始有封)
말에는 본래 일정함이 없다.(言未始有常)
'이것이다(爲是)' 라고 말하면서 경계가 생겨났다.(爲是而有畛也)
그 경계에 대해 말해보겠다.(請言其畛)
말에는 왼편이 있고 오른편이 있으며,(有左有右)
이론이 있고 설명이 있으며,(有論有義)
분석이 있고 변론이 있으며,(有分有 辯)
대립이 있고 논쟁이 있다.(有競有 爭)
이것을 말의 '여덟가지 덕(八德)이라고 한다.(此之謂八德)
천지 사방 밖의 일을(六合之外)
聖人은 살피기만 하지 말하지 않는다.(聖人存而不論)
천지 사방 안의 일을(六合之內)
聖人은 말하지만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聖人論而不議)
『춘추(春秋)』는 세상을 다스리는 길을 쓴 책으로(春秋經世)
옛 임금들의 뜻이 실려 있는데,(先王之志)
聖人은 자세히 밝히지만, 시시비비를 분별하지 않았다.(聖人議而不辯)
거기에는 분석해야 할 것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이 있고(故分也者 有不分也)
분별해야 할 것에 대해 분별하지 않은 것이 있다.(辯也者 有不辯也)
聖人은 어째서 그렇게 했는가?(曰 何也)
聖人은 그것을 마음 속에 품는다.(聖人懷之)
그러나 보통 사람은 분별하고(衆人辯之)
자기 주장을 내세워 뽐낸다.(而相示也)
그러나 옛말에 '분별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라고 했다.(故曰 辯也者 有不見也)
큰 道는 이름이 없다.(夫大道不稱)
큰 변론은 말하지 않는다.(大辯不言)
큰 어짊은 어질지 않은 듯 하다.(大仁不仁)
큰 염치는 하찮이 사양하지 않는다.(大廉不嗛)
큰 용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大勇而不忮)
道가 밝게 드러나면 道가 아니고,(道昭而不道)
말이 이론적이면 불충분하고,(言辯而不及)
언제나 어질다면 완전하지 못하고,(仁常而不成)
염치가 맑기만 하다면 미덥지 못하고(廉淸而不信)
용감한 것이 객기가 되면 일을 이루지 못한다.(勇忮而不成)
이 다섯 가지는 본래 원만한 가치였지만(五者圓)
지금은 모나게 되었다.(而幾向方矣)
그 앎이 알지 못하는데서 그치면 지극하다.(故知止其所不知, 至矣)
그 누가 있어서 말하지 않는 변론과 道의 모습을 지니지 않은 道를 아는가?
(孰知不言之辯 不道之道)
그런 사람이 있다면(若有能知)
그를 '하늘의 곳간(天府, 천부)'이라고 부르리라.(此之謂天府)
그것은 아무리 부어도 가득 차지 않고(注焉而不滿)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으며(酌焉而不竭)
그 유래를 알지 못하니,(而不知其所由來)
이런 경지를 일러서 '감추어진 빛(葆光, 보광)'이라고 한다.(此之謂葆光)
※ 道는 본래 경계와 구역이 없고 가를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은 본래 고정된 실체나 일정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다(爲是)'라고 말하면서 '저것이다(爲此)'가 생겨났다.
말을 통해서 道를 나누어 가르고 '경계와 구별(畛), 한계'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악(惡)이다. 옳지 않다(非, 不可)'라고 말하면서
'저것이 선(善)이다, 옳다(是, 可)'가 생겨났다.
그러나 본래 道에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경계와 구별이 없었다.
또한 '이것이 보수(保守)의 길이다'라고 말하면서
'저것은 진보(進步)의 길이다'라고 하는 당파성(黨派性)이 생겨났다.
그러나 道는 본래 가를 수 없는 것이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다.(大道不稱)
큰 道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
다만 널리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이 있을 뿐이다.
※'육합(六合)'은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四方)과 하늘(天, 上)과 땅(地, 下)을 합친 말이니,
바로 '천지사방(天地四方)'이다.
이것은 3차원의 입체적인 '우주 공간(宇宙)'을 말한다.
천지사방 밖의 일(六合之外)이란 '우주공간 밖의 일'이니,
聖人이 살피기는 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 해도 어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천지사방 안의 일(六合之內)이란 '우주공간 안의 일'이니,
바로 '자연(自然)과 자연현상'에 대한 것으로
聖人이 말하지만 자세히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현대과학으로도 자연현상을 일일이 다 밝힐 수가 없다.
『춘추(春秋)』는 기원전 5세기 경에 공자(孔子)가
옛 임금들의 뜻과 한 일을 엮은 책인데,
그것은 '역사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聖人은 역사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세상 사람(後人)을 위해 그 일을 자세히 밝혀두지만,
그것을 분별하여 세상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지 않았다.
聖人은 그 모든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자신의 길(大道)을 갈 뿐이다.(聖人懷之)
그러나 보통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서(衆人辯之)
자신의 지혜와 의로움을 서로 뽐내며 세상과 끊임없이 다툰다.(而相示也)
그러나 그렇게 분별하는 사람은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辯也者 有不見也)
그것이 무엇인가?
※ 큰 道는 이름 붙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름이 없다.(大道不稱)
큰 변론은 말하지 않는다. 道는 사람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은 말없이 위대한 道를 보여주고 있다.(大辯不言)
큰 사랑은 마치 사랑하지 않는 듯 하다.
왜냐하면 사사로운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大仁不仁)
큰 염치는 하찮이 사양하지 않는다.(大廉不嗛)
참으로 깨끗한 것은 더러워보인다.
聖人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선과 악을 넘어선다.
예수는 일곱 귀신이 씌었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공양을 받았으며,
삼장법사는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면서
세 요괴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세 요괴의 이름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다.
큰 용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大勇而不忮)
남을 해치는 사나움은 욕심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며, 객기일 뿐이다.
이처럼 道(大道), 변론(大辯), 어짊(大仁), 염치(大廉), 용기(大勇),
이 다섯 가지는 본래 원(圓)처럼 완전한 것이지만(五者圓)
지금은 인간의 작위(作爲)로 때문에 모난 것(方), 불완전한 것에 가까워졌다.(而幾向方矣)
※ 앎(知)이 '알지 못하는데(不知, 모른다)'서 그치면 지극한 경지가 된다.
(知止其所不知, 至矣)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장자(莊子)는 말한다.
과연 그 누가 '말하지 않는 변론(不言之辯)'과
'道의 모습을 지니지 않은 道(不道之道)'를 아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를 '하늘의 곳간(天府, 천부)'이라고 부르겠다.
그 '하늘의 곳간(天府, 천부)은 아무리 부어도 가득 차지 않고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으며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그 유래를 알지 못하니,
'감추어진 빛(葆光, 보광)'이라고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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