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1-4.소요유(逍遙遊)
: 지식은 한 벼슬을 맡아서 해낼 만 하고(故 夫知効一官)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지식이 한 벼슬을 맡아서 해낼 만 하고
행실이 한 고을을 다스릴 만 하고
덕망이 한 임금의 마음에 들어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살피는 것이 이 메추라기(斥鴳)의 수준이다.(其自視也 亦若此矣)
그런데 송영자(宋榮子)는 저들을 은근히 비웃으며
온 세상이 칭찬해도 신나서 더욱 힘을 쏟거나
온 세상이 비난해도 풀죽어 그만 두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안과 밖의 구별을 바르게 짓고(定乎內外之分)
영예와 치욕의 경계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辯乎榮辱之境)
그럴 수가 있었다.(斯已矣)
그는 세상 일에 급급해 하지 않았지만 (彼其御世 未數數然也)
아직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雖然 猶有未樹也)
신선(神仙)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다니는데 (夫列子御風而行)
가볍고 날렵하게 날아다니다 십오 일 후에야 돌아오곤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는 일(致福)에
급급해 하지 않았다.(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그가 비록 발로 걸어다니는 수준은 벗어났다 해도(此雖免乎行)
아직은 바람에 의지해야 한다.(猶有所待子也)
하지만 만약 천지의 정기(正氣)를 타고(若夫乘天地之正)
여섯 가지 기운(六氣)의 변화를 부려서 (而御六氣之辯)
끝없는 세상(無窮)에 노니는 사람이라면 (以遊無窮者)
그 무엇에 새삼 의지하랴? (彼遮惡乎待哉)
그러므로 옛부터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至人 無己)
신인(神人)은 공적이 없고(神人 無功),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聖人 無名)"고 하였다.
※ 장자(莊子)가 보기에..
비록 지식이 많고 행실이 훌륭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그의 감각과 인식능력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상(現象)'에만 갇혀 있어서
그 너머의 '본질(根本, 道)의 세계', 즉 '道의 무궁한 세계'를 보지 못한다면..
그래서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만을 바라면서 의식적으로 행동하고(有爲, 作爲),
세상 사람의 평가와 보상에 좌우되어 그에 따라 울고 웃는 삶을 산다면..
그는 참된 자유인(自由人)이 아니며,
그의 소견(所見)은.. 붕새를 비웃는 '작은 메추라기(斥鴳)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 '송영자(宋榮子, 宋牼)'는 맹자(孟子)시대의 실존인물로..
무욕(無欲)과 무저항(無抵抗)을 주장했던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이익을 초월해서 '세상의 평화(平和)'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장자(莊子)가 보기에..
그런 송영자(宋榮子)는 비록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수준은 뛰어 넘었지만, 거기에 그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추구하는 '세상의 평화(平和)'라는 '가치, 이데올로기'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상대적인 가치의 세계', 즉 '분별지(分別知)'에 의지해서 일하기 때문에..
아직은 '완전한 자유(自由)', '道의 무궁한 세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장자(莊子)는 말한다.
※ 여기서 '열자(列子, 列御寇)'는 '여산(勵山, 列山)의 산신(山神)'이다.
신선(神仙) 열자(列子)는 농업의 신(神)으로 보름마다 바뀌는 절기(節氣)에 따라
바람을 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복(福)을 베풀지만,
그 일에 서두르는 일이 없고 그 결과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일의 성패(成敗)'에 급급해 하지 않으니,
송영자(宋榮子)보다는 분명 더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장자(莊子)가 보기에..
신선(神仙) 열자(列子)도 여전히 '무엇(바람, 風)'에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 '완전한 자유(自由)', '道의 무궁한 세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장자(莊子)는 참으로 신랄한 사람이다.
※ 하늘에는 육기(六氣)가 있으니, 음양풍우회명(陰陽風雨晦明)이요,
땅에는 오행(五行)이 있으니,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이다.
※ '천지의 바른 기운(天地之正)'은 자연(自然)의 참된 모습이니(無爲自然)...
자연(自然)의 道를 알고(天地之正),
자연의 기운(六氣)을 쓰며
'시작도 끝도 없는 道의 무궁(無窮)한 세계'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면(以遊無窮者)...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다.
그는 '완전한 자유인(自由人)'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의지한다는 것은(有所隊者)..
역으로 '무엇'이 그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옛부터 그런 사람을
'지인(至人)'이며, '신인(神人)'이며, '성인(聖人)'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였을까?
먼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는데,
자신이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완전한 깨달음, 완전한 자유(自由)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일종의 자기선언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하나(一, 道)'이다.
장자(莊子)는 이같은 '완전한 자유(自由)'를..
다시 '무(無), 무위(無爲)'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도가(道家)에서.. 그것은 전통적으로..
먼저 '자신의 사사로움(私, 己)'에 의지하지 않고(至人 無己,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이룬 공적'에도 의지하지 않고(神人 無功, 공적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에도 의지하지 않는다(聖人 無名,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는다)는...
'무기(無己), 무위(無爲), 무공(無功), 무명(無名)'의 경지라고 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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