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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1-2.소요유(逍遙遊):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小知不及大知)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1. 6.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1-2.소요유(逍遙遊)

: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小知不及大知)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소요유(逍遙遊)'란..

'마음이 절대적인 자유(自由)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遊)'이다.


이 절대적인 자유는.. 대소(大小), 장단(長短), 무용(無用)과 유용(有用)의 경지를 초월한..

즉 상대적인 가치 판단의 세계를 초월한..'초월적 행복의 상태'이다.


이것은 오직 '영혼의 각성과 변화(깨달음)'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무하유(無何有)의 세계'이니, 

불가(佛家)의 '무소유(無所有)' 혹은 유가(儒家)의 '낙천안명(樂天安命)'의 경지와도 같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小知不及大知)

짧은 세월은 긴 세월에 미치지 못한다.(小年不及大年)

왜 그런가?



새벽녁에 났다가 아침 햇살에 죽고 마는

'조균(朝菌)'이란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한다.

 '쓰르라미(蟪蛄)'는 봄 가을을 알지 못한다.

그 삶이 짧기 때문이다.



초(楚)나라 남쪽 아득한 바다(冥海)에 '명령(冥靈)'이란 거북이 살고 있다.

그는 오백 년을 봄으로 삼고, 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



상고(上古)시대에 '대춘(大椿)'이란 전설의 큰 참죽나무가 있었다.

그는 팔천 년을 봄으로 삼고, 팔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팔백 년을 산 '팽조(彭祖)'가

사람으로는 가장 오래 살았다고 소문이 나서,

모두가 부러워하며 그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 '조균(朝菌)'이란 버섯은 '한달'이란 시간의 길이를 모른다.

'쓰르라미(蟪蛄)'는 '일년'이란 시간의 길이를 모른다.

이들은 모두 '짧은 세월을 사는 존재(少年)'다.


'명령(冥靈)'이란 거북의 1년은 사람의 2천년에 해당한다.

'대춘(大椿)'이란 나무의 1년은 사람의 3만 2천년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긴 세월을 사는 존재(大年)'다.


 '신선(神仙) 팽조(彭祖)'는 8백년을  살아서 사람으로는 가장 오래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팽조(彭祖) 역시..

비록 버섯(朝菌)과 쓰르라미(蟪蛄)에 비하면 오래 산 것이나,

전설의 거북(冥靈)과 참죽나무(大椿)에 비하면 너무 짧은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팽조가 오래 살았다고 말해야 할까, 짧게 살았다고 말해야 할까?



장자(莊子)는 오랜 삶이 짧은 삶보다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장자(莊子)를 오해하는 일이다.


'길고 짧은 것(長短)'은 상대적인 가치다.

어떤 비교하는 기준이 있어서  '~에 비해서 길다',  '~에 비해서 짧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준이 바뀌면 따라서 늘 변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런 상대적인 가치, 변하는 가치를 쫓는 삶은 고단하고 슬프다.  

그것은 세상의 '작은 지혜(小知)'일 뿐이다.



장자(莊子)는 오히려 세상 사람이 상대적인 가치 판단(小知)의 세계를 넘어서서

절대적인 자유(自由)의 경지를, 세상 밖의 '큰 지혜(大知)'를 찾지 않는 것을 슬퍼한다.

 

 삶에 급급해서 삶을 낭비하는 걸 슬퍼한다.     


8백 년을 산다해도 무슨위로가 될까?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