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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1-3.소요유(逍遙遊): 궁발의 북쪽에 명해(冥海)라는 바다가 있는데(窮髮之北有溟海者)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1. 13.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1-3.소요유(逍遙遊)

: 궁발의 북쪽에 명해(冥海)라는 바다가 있는데(窮髮之北有溟海者)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옛날에 탕(湯)임금이 현자(賢者)인 극(棘)에 물은 것도 이 이야기다.



'궁발(窮髮)'이라는 불모지의 땅 북쪽에

'명해(冥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이것이 '천지(天池, 하늘못)'다.



그 곳에 물고기가 있는데 너비가 수천 리이고, 

그 길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 이름이 '곤(鯤)'이다.



또 그 곳에 새가 있는데, 이름이 '붕(鵬)'이다.

붕새(鵬)의 등은 마치 태산(泰山) 같고

그 날개는 하늘에 구름을 드리운 것 같다.



회오리 바람(扶搖)을 타고

산양의 뿔(羊角)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구만리 창공을 날아 올라

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남쪽으로 향하는데,

'남쪽 바다(南冥)'로 날아간다.



작은 못 주위에 사는 메추라기(斥鴳)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 친구는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내가 뛰어 날아오르면 두어 길을 못 가서 내려오고

쑥대밭 사이에서 오락가락 할 뿐이지만,  

이것도 분명 나는 것이며, 즐거움이 지극하다.(此亦飛之至也)

 저 친구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此小大之辨也)





※ 여기서 붕새(鵬)와 메추라기(斥鴳)는 가장 큰 것(大)과 가장 작은 것(小)을 상징한다.


북쪽 너른 바다(冥海)와 작은 연못(),

구만리 상공의 비상과 두어 길의 날개짓,

북쪽 바다(北冥)에서 남쪽 바다(南冥)로 향하는 오랜 여정과 쑥대밭 사이에서 오가는 것..


붕새(鵬)와 메추라기는 그 크기와 스케일에 있어서

 너무나 다른 존재이다..(此小大之辨也)



여기서 상대를 비웃는 것은 큰 붕새(鵬)가 아니라, 작은 메추라기다.


장자(莊子)가 보기에..

작은 것(小)이 큰 것(大)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와 너무 다른(different)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다르다(different)'는 것은..

 '틀리다, 혹은 나쁘다(wrong)'가 아니다.


다만 '다를 뿐(difference)'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조화(調和, harmony)의 시작'이다.


 붕새(鵬)는 메추라기의 비웃음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을 믿는 어쩌면 현실주의자인 메추라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먼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어쩌면 이상주의자인 붕새(鵬)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속물(俗物)인 메추라기도.. 비록 두어 길을 날지만,

'나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此亦飛之至也)

즉, '삶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


메추라기도 붕새(鵬)도 모두 '나는 것의 즐거움(亦飛之至)'을 알고 있다.

그리고 둘 다 날기 위해서는 바람을 타야 한다.


다만 메추라기의 눈으로는.. 붕새(鵬)의 비상을 볼 수 없을 뿐이다.

붕새의 '사는 즐거움'을 알 수 없을 뿐이다.




 장자(莊子)는 큰 것이 작은 것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장자(莊子)를 오해하는 일이다.


장자(莊子)는.. 사람의 감각과 인식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큰 것(大)과 작은 것(小)은 다른 것(difference)이며,

그것도 '상대적인 가치기준'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것(difference)뿐이다.


하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붕새(鵬)와 메추라기는 서로 얼마나 크고 얼마나 작으며,

서로 얼마나 다른 것일까?


여기서 작은 메추라기는 자신의 감각과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의 감각은 '현상(現象)'에 매여 있기 때문에.. 

'현상(現象)'에 의해 제한받고 있기 때문에..

 '현상 너머의 것, 본질(本質, 道)'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붕새(鵬)를 비웃는다.



하지만 장자(莊子)는.. 사람의 감각과 인식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상대적인 가치의 판단(分別知)'만으로는..

결코 '절대적인 자유의 세계(無何有)'를 볼 수 없다고..

우화(寓話)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