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1-5.소요유(逍遙遊)
: 요(堯)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고자(堯讓天下於許由 曰)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요(堯)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天下)를 물려주고자 말했다.(堯讓天下於許由 曰)
"해와 달이 떴는데 횃불을 피우면(日月出矣 而爝火不息)
그 불빛이 빛나기(光)가 어렵지 않겠소? (其於光也 不亦難乎)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도랑물을 계속 댄다면(時雨降矣 而猶浸灌)
그 땅을 적시는(澤) 노력이 헛되지 않겠소?(其於澤也 不亦勞乎)
선생께서 임금이 되면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질 텐데(夫子立而天下治)
내가 아직도 주인(尸) 노릇을 하고 있구려.(而我猶尸之)
나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으니(吾自視缺然)
부디 선생께서 천하를 맡아주시오.(請致天下)"
그러자 허유(許由)가 대답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려 천하는 이미 잘 다스려지고 있소.(子治天下 天下旣易治也)
그런데도 내가 당신을 대신한다면(而我猶代子)
나더러 이름(名)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란 말이오?(吾將爲名乎)
이름(名)이란 '실질(實)의 껍데기(賓)'에 불과할 뿐인데(名者實之賓也)
나더러 껍데기(賓)가 되란 말이오?(吾將爲賓乎)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지만(鷦鷯巢於密林)
나뭇가지 하나를 차지할 뿐이요,(不過一枝)
들쥐가 황허(河)의 물을 마시지만(偃鼠飮河)
제 배 하나 채우면 넉넉한 것이오.(不過滿腹)
임금(君)이여, 돌아가서 쉬시오.(歸休乎 君)
나는 천하(天下)같이 큰 물건은 쓸 데가 없소.(子無所用天下爲)
비록 요리사(庖人)가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庖人雖不治庖)
시축(尸祝)이 제삿상(樽俎)을 넘어가
그의 일을 대신하지 않는 법이라오."(尸祝不越樽俎 而代之矣)"
※ 요(堯)임금은 기원전 2300년 경의 사람으로..(단군 왕검과 같은 시대의 사람임)..
중국의 전설적인 태평성대인 '요순(堯舜)시대'를 열었던 성군(聖君)이다.
그에게는 '단주(丹朱)'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불초했기 때문에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순(舜)을 발탁하여 왕위를 물려주었다.
즉 '선양(禪讓)'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요(堯)임금은 먼저 당대의 은자(隱者)이며 선인(仙人)인 허유(許由)를 찾아가..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것은 '기산영수(箕山潁水)'라는 전설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 요(堯)임금은 허유(許由)의 덕에 비하면..자신은..
'해와 달 앞의 횃불(爝火)'이요,
'때에 맞춰 내리는 비 앞의 작은 도랑물(浸灌)'과 같으니,
비록 천하를 위해 애썼지만 그 이룬 공(功)이 적다는 것을 알고..
허유(許由)를 찾아간다.
여기서 해(日)와 달(月), 비(雨)는..
'자연의 빛(光)'이며, '자연이 주는 윤택함(澤)'이다.
그것은 '함이 없이 행하는(無爲).. 대자연(自然)의 도덕(道德)'이니,
허유(許由)가 속해있는 '도가(道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횃불(爝火)과 도랑물(浸灌)은..
'인간이 만든 빛(光)'이며, '인간이 창조하는 윤택함(澤)'이다.
그것은 '인의(仁義)의 의지와 실천력'으로 드러나는..
'인간사회의 유위(有爲)의 도덕(道德)'이다.
바로 요(堯)임금이 속해있는 유가(儒家)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장자(莊子)는 은자인 허유(許由)와 천하의 주인인 요(堯)임금을 통해..
'무위(無爲)의 도덕'을 주장하는 도가(道家)의 입장과
'유위(有爲)의 도덕'을 주장하는 유가(儒家)의 입장을 대립시켜서 보여준다.
물론 장자(莊子)는 도가(道家)철학의 정통 계승자로서..
일관되게 '무위(無爲)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허유(許由)는 기산(箕山)에 숨어살던 도가(道家)의 현자(賢者)였다.
허유(許由)는 요(堯)임금이 해와 달에 비유해가며 자신을 추켜 세우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하의 주인'이라는 '이름(名)을 얻기 위해서'..
요임금을 대신하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름(名)이란.. '실질(實)의 껍데기, 손님(賓)'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名者實之賓也)
허유(許由)는 다만 '자기 삶의 주인(實)'이 되고자 할 뿐이며,
'껍데기, 손님(賓)'이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고 대답한다.
즉 헛된 이름이나 명예를 좇기 위해서 자기 삶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허유의 이 대답은 철저하게.. 도가(道家)의 '양생(養生)철학',
즉 '양생론(養生論)'에 기초한 대답이다.
뱁새가 깊은 숲 속에 살지만 나뭇가지 하나에 집을 지으면 그만이고,
새앙쥐가 큰 강물을 마음껏 마시지만 제 배 하나 채우면 충분하듯이..
나는 이미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知足)
그런 내게.. 천하 같이 크고 거추장스러운 물건은 도무지 쓸 데가 없다.
그러면서 다소 오만해 보이는 말을 덧붙인다.
만약 요리사가 음식을 잘 못한다고 해도
제사 지낼 때 축문을 읽는 '제주(祭主, 尸祝)'가 제삿상을 넘어가서
요리사의 일까지 대신 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이다. (尸祝不越樽俎 而代之矣)
※ 도가(道家)에서 전통적으로 '완전한 자유인(自由人)'는..
'지인무기(至人無己)', '신인무공(神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된다.
장자(莊子)가 보기에..
요(堯)임금도, 허유(許由)도 '완전한 자유인'에는 이르지 못한 인물들이다.
왜 그럴까?
요(堯)임금은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서..
'태평성대를 이룩한 임금'이라는 '공(功)'을 버리고자 했지만(無功),
'왕위를 양보한 임금'이라는 '이름(名)'까지는 버리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요(堯)임금은 '선양(禪讓)을 한 어진 임금'이라는 명성(名)을 얻고 있지 않은가?
또한 허유(許由)는 천하를 받지 않아서..
천하의 주인이라는 '헛된 이름(名)'은 버렸지만(無名),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己)'까지 버리지는 못했다.
아직 '무기(無己)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을 그의 친구인 '소부(巢父)'가 잘 지적해 주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뒤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조금 더 '완전한 자유인'에 다가서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기산영수(箕山潁水)'라는 전설에 의하면..
허유(許由)는 요(堯)임금과 헤어져서
'기산(箕山)' 아래로 흐르는 '영수(潁水)'라는 강가로 내려갔다.
그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강물로 자신의 귀를 씻었다.
그 때 마침 친구인 '소부(巢父)'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모습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허유는 요임금과의 대화를 말해 주었다.
그러자 소부(巢父)는 허유가 귀를 씻어서 강물이 더러워졌다며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이때 소부(巢父)는 허유에게 뼈 아픈 지적을 해 준다.
당신이 제대로 숨지 않았기 때문에 요(堯)임금 같은 자가 당신을 찾아오는 것이다.
이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제대로 숨으라고 질타한다.
허유가 아직 '무기(無己)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지적해 준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의 그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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