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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1-6.소요유(逍遙遊):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말하기를(肩吾問連叔 曰)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1. 27.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1-6.소요유(逍遙遊)

: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말하기를(肩吾問連叔 曰)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말했다.


"내가 접여(接輿)의 말을 들었는데

그의 말이 거창하기만 했지 이치에 닿지 않고(大而無當)

끝없이 나아가기만 할 뿐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었네.(往而不返)

나는 그의 말에 놀라고 두려움을 느꼈네.(吾驚怖其言)

마치 하늘의 은하수(河漢)처럼 끝이 없었기 때문에(猶河漢而無極也)

너무 차이(徑庭)가 나서, 인간 세상의 상식(人情)과는 먼 것이었네.(大有徑庭 不近人情焉)"



연숙(連叔)이 물었다.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였소?"



견오(肩吾)가 대답했다.


"막고야(姑射)산에 신인(神人)이 사는데(姑射之山 有神人居焉)

살결은 얼음과 눈처럼 희고(肌膚若氷雪) 

부드럽고 곱기는 어린 처녀 같으며(淖約若處子) 

오곡(五穀)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不食五穀 吸風飮露)

구름을 타고 나는 용을 몰아서(乘雲氣 御飛龍)

사해(四海)의 밖에서 노닌다더군.(而遊乎四海之外)



그의 정신이 응집되면(其神凝)

만물이 상하거나 병드는 일이 없고(使物不疵癘)

곡식도 잘 여문다고 하더군.(而年穀熟)

하지만 나는 미친 소리(狂)라고 여겨 믿지 않았네.(吾以是狂 而不信也)"



연숙(連叔)이 말했다.


"그렇겠소. 장님(瞽)은 아름다운 무늬를 볼 수 없고

귀머거리(聾)는 아름다운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없소.

어찌 몸(形骸)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다고 하겠소?

정신(知)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으니,

바로 자네 같은 친구를 두고 한 말 같으이.



그런 신인(神人)의 덕(德)은(之人也 之德也) 

만물을 하나(一)로 만드는 것이오.(將旁礴萬物以爲一)

세상이 그에게 다스림 받기를 바라지만(世蘄乎亂)

어찌 수고롭게 천하를 다스리겠소?(孰弊弊焉以天下爲事)



그런 사람은 사물이 해치지를 못하오.(之人也 物莫之傷)

큰 홍수가 하늘까지 덮어도 그를 빠뜨리지 못하고

큰 가뭄이 쇠와 돌을 녹이고 산과 흙을 태워도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하오.



그는 티끌과 때, 쭉정이와 겨를 가지고도(是其塵垢粃糠)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쯤은 빚어 만들 수 있거늘(將猶陶鑄堯舜者也)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일을 삼겠소?(孰肯以物爲事)



송(宋)나라 사람이 은(殷)나라의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宋人資章甫)

월(越)나라로 팔러 갔소.(而適諸越)

그런데 월(越)나라 사람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越人斷髮文身)

몸에 문신(文身)을 새기고 살기 때문에

 그런 모자를 쓸 데가 없었소.(無所用之)



요(堯)임금이 천하 백성을 다스리고 (堯治天下之民) 

나라 안의 정치를 안정시킨 다음,(平海內之政)

분수(汾水)의 북쪽 막고야(姑射)산에 가서 

네 신인(神人)을 만나뵈었소.(往見四子 姑射之山 汾水之陽)

그러고는 그만 멍하니 앉아 천하를 잊어버렸다고 하오.(㴭然喪其天下焉)"





※견오(肩吾)와 연숙(連叔)은 모두 장자(莊子)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접여(接輿)는 춘추(春秋)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육통(陸通)이다.

공자(孔子)가 직접 만나기도 했던 그는 도가(道家)의 실존인물이다. 

접여(接輿)는 벼슬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는데,

(楚)나라 임금이 많은 예물을 보내어 그를 불렀지만, 가지 않았다.

그는 산천에서 놀았고(遊), 그 죽은 곳을 몰랐다. 

뒤에 신선(神仙)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접여(接輿)는 본래 황당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초(楚)나라의 미치광이, 초광접여(楚狂接輿)'라고 불렸다.




※ 여기서 견오(肩吾)는 광인(狂人) 접여(接輿)에게..

막고야(姑射)산에 살고 있다는 '어느 신인(神人)의 이야기'를 듣는다.


 '막고야(姑射)산'은 도가(道家)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 속의 산(山)'이다.

 


그 막고야(姑射)산의 신인(神人)은..

 얼음과 눈처럼 희다. ( 죄와 허물이 없다. 맑고 밝고 빛나는 존재다.)

어린 처녀처럼 부드러운데 그 나이를 알 수 없다.( 여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양생養生'을 잘 했다는 뜻.)

곡식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신다. ( 먹고 사는.. 생존 문제에서 벗어났다.)  

구름과 용을 타고 다닌다. (시간과 공간의 구속에서 벗어났다.)

사해(四海)의 밖에서 노닌다(遊). ( 인간세상 밖의 존재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다.)



그 신인(神人)은.. 더 이상 인간 세상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세속적 가치에 매이지 않고.. 급급해 하지 않는.. 지극히 자유(自由)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정신(神)이 집중되어 정기(精氣)를 한 곳에 모으면

온갖 사물이 병들지 않고 

그의 공(功)으로 곡식이 잘 익는다,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고야(姑射)산의 신인(神人)은.. 사해(四海) 밖에서, 즉 세상 밖에서 노닐기 때문에..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그의 얼굴도, 이름도, 그의 공(功)도 알 수가 없다.

즉, 그는 무명(無名), 무공(無功)의 존재라는 것이다.



견오(肩吾)는 광인 접여(接輿)의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듣고 놀라 두려움을 느꼈다.

접여(接輿)가 '진짜로 미쳤구나(狂)'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그런 견오(肩吾)의 말을 들은 연숙(連叔))은..

인간 세상의 상식으로.. 고정관념으로..

신인(神人)의 경지를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견오(肩吾)에게.. 당신처럼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진 사람은

'정신적인 장님'이나 '귀머거리'와 같다고 심하게 말한다.


그런데 연숙(連叔)이 하는 말은..

오히려 광인 접여(接輿)의 말보다 더욱 더 황당하게 들린다.

견오(肩吾)는 그저 어질어질할 뿐이다.



연숙(連叔)의 말에 의하면..

 막고야(姑射)산에 사는 신인(神人)은 한 명이 아니라, 적어도 네 명 이상의 존재들이다.

그 숫자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명의 신인(神人)이.. 막고야(姑射)산에서 '같이 또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인(神人)의 덕은 바로 ..

 '만물을 하나(一, 道)로 만드는 것(將旁礴萬物以爲一)'이란다..



본래 만물은 '하나(一, 道)'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元始反本)


그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一 始無始 一終無終一)'를..

 굳이 이름(名)을 붙여서 말한다면..

'도(道)'라고 한다.


또한 '만물의 뿌리(根原, 本)'이라고 말하고,

'만물의 어머니(母,玄牝)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물을 하나(一, 道)로 만든다(將旁礴萬物以爲一)'는 것은..

만물을 '본래의 자리(一, 道)로, 근원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元始反本)



그것은 바로 '道가 하는 일'이다. 그것이 道다.


그러므로 신인(神人)은 '道와 하나된 존재', '道 그 자체'이다.

신인(神人)은 바로 '道의 인격화된 모습'인 것이다. 




※ '道의 인격화된 존재'인 신인(神人)은..

'천지만물과 내가 한 몸이요,(天地與我一體), 뿌리임(萬物與我同根)'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만물을 차별없이.. 공평(公平, 平等)하게 대한다.'


이것이 '만물을 가지런히 여긴다'는..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의 시작이다.


'제물(齊物)'...이것이 신인(神人)의 가장 크고 가장 근본적인 德이다.



 

※ 그렇게 '道와 하나된 존재'인 신인(神人)은..

어떤 사물도 그를 해치거나 상처를 입힐 수가 없다.(物莫之傷)


어떤 큰 물도, 어떤 큰 불도..

그를 빠뜨리거나 뜨겁게 하여..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즉 어떤 외부의 요인도.. 어떤 환경도..

그를 흔들거나 망가뜨려서.. 그를 道에서 멀어지게 할 수 없다.


자신의 육체적 죽음 앞에서도..

그는 언제나 '그 자신(大我, 無我)'일 뿐이며, '진정한 자유인'일 뿐이다.

그는 결코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신인(神人)은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산다.(永生, 不生不滅)


왜냐하면 그에게는 상처받거나 죽을 수 있는 '자기(己, 小我)'가 없기 때문이다.(無己)


다만 '본래의 자리(一, 道), 근원의 자리, 하나(一), 道'로 돌아갈 뿐이다.(元始反本)



그러므로 道와 하나된 존재.. 막고야(姑射)산의 신인(神人)은.. 

마침내 '자기(己, 小我)가 없는 경지..사사로움이 없는 경지(無私)'..

바로 최상(最上)의 경지인.. '무기(無己)'의 경지에 이른 존재다.


즉,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완전한 자유인(自由人)'이다.




※ 그러므로 세상의 밖에서(四海之外)..

道의 무궁한 세계에서 노니는 신인(神人)들에게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마치 '환상의 꽃(幻化)'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지나 때, 쭉정이나 겨 같은 것으로도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 쯤은.. 마치 진흙으로 그릇을 빚거나..

 주형에 쇳물을 부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인간이란 어차피 흙으로,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 중국문학에서 송(宋)나라 사람은 종종 바보, 어리석은 사람으로 풍자가 된다. 


여기서 그는 장사 밑천을 모두 털어서

 은나라의 모자인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越)나라로 팔러 갔다.

그런데 가장 남쪽 지방에 있는 월(越)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살기 때문에.. 그런 모자가 쓸 데가 없었다.


물론 송(宋)나라 사람은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송(宋)나라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물건이  

월(越)나라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와 마찬가지로..,

요(堯)임금에게는 천하가 아주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요(堯)임금은 그 물건을 허유(許由)에게 주려고 했지만, 허유(許由)는 받지 않았다. 

허유(許由)에게는 천하가 그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허유는 자신을 찾아 온 요(堯)임금에게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고,

무엇이 진정한 보물인지'를.. 깨우쳐 주지는 못했다.



훗날, 요(堯)임금이 천하를 잘 다스린 후에,

마침내 '분수(汾水, 지금의 중국 산서성에 있는 강)의 북쪽'에 있다고 전해오는..

상상 속의 산.. 신선(神人)들이 살고 있다는.. '막고야(姑射)산'으로 가서

네 신인(神人)을 찾아 뵈었다.


요(堯)임금은 스승을 찾아서 그 먼 길을 갔던 것이다.



거기서 요(堯)임금은  네 신인(神人)을 만나뵙고는.. 

그만 멍하니 앉아 천하를 잊어버렸다.(㴭然喪其天下焉)


즉, 좌망(坐忘)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요(堯)임금은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비로소 그는 진정한 스승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