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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도덕경(道德經)

노자 이야기- 13장.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놀라니..(寵辱若驚), 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視之不見)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5. 11. 12.

 

 

(노루귀)

 

 

 

 

 

노자 이야기- 13장.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놀라니(寵辱若驚)..

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視之不見)..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13장.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놀라니..(寵辱若驚)..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 貴以身爲天下者,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者, 若可託天下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상, 욕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 귀이신위천하자,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자, 약가탁천하

 

 

 

 

 

"(사람들은)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놀라니, (寵辱若驚)

(이것은)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貴大患若身)

 

 

 

어째서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는 일에 놀란다고 말하는가. (何謂寵辱若驚)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것은 좋은 것으로 알고 (寵爲上)

욕을 먹는 것은 나쁜 것으로 안다. (辱爲下)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얻어도 놀라고 (得之若驚) 잃어도 놀라는 것이다. (失之若驚)

 

이것을 사랑을 받거나 욕을 먹는 일에 놀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是謂寵辱若驚)

 

 

 

어째서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는가. (何謂貴大患若身)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게 몸이 없다(無身)는 경지에 이르면 (及吾無身)

  내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吾有何患)

 

 

 

제 몸을 (진실로) 귀하게 여기고 천하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貴以身爲天下者)

천하를 맡길 수 있다. (若可寄天下)

 

제 몸을 (진실로) 사랑하고 천하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愛以身爲天下者)

천하를 다스리게 해도 좋다. (若可託天下)"

 

 

 

 

 

 

 

 

 

 

※Tip!-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여기서 '경驚'은 '놀라다, 흥분하여 들뜨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사랑(寵)을 받으면 좋아서 놀라고, 욕(辱)을 먹으면 두려워서 놀란다.

사랑을 받으면사랑을 잃을까봐 큰 근심이 되고,

욕을 먹으면 두려움에 큰 근심이 된다.

 

것은 결국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貴大患若身)

 

여기서 '사랑(寵)'과 '욕(辱, 치욕)'을 '명예'와 '불명예'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Tip!- 급오무신 오유하환 及吾無身 吾有何患

 

 

사람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바로 '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몸'을 '나(小我, ego)'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나(小我, ego)'라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사랑받고, 내가 지위가 높아지고,

내가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근심이 생기는 것이다.

 

 

 만일게 몸(身, 自己, 小我, ego)이 없다면,

혹은 내게 '몸(身, 自己)이 없다는 경지(無身)에 이른다면',

내가 흥분하여 들뜨고 걱정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及吾無身 吾有何患)

 

 

여기서 '무신 無身'은 바로 '무기無己', '무아無我',

'대아大我',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성된 사람은 자기가 없다. 신인은 공이 없다. 성인은 이름이 없다."

至人无  神人无功  聖人无名

지인무기 신인무공 성인무명  

(『장자』-「소요유」에서 )

 

 

 

 

 

 

 

 

 

 

※Tip!- '귀이신 위천하 약가기천하 貴以身爲天下者 若可寄天下'와 

'애이신 위천하 약가탁천하 愛以身爲天下者 若可託天下'

 

 

제 몸을 (진실로) 위하고 (貴以身),

제 몸을 (진실로) 사랑한다(愛以身)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반어법이다.

노자老子는 종종 '반어법反語法'을 즐겨쓴다.

 

 

 

"하늘 위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天上天下唯我獨存   천상천하유아독존

 

여기서 나(我)는 '작은 나(小我, eg0)'가 아닌 '큰 나(大我, 無我, 眞我)'를 말한다.

 

 

 

"이 몸 밖에 따로 물건이 없다."

身外無物   신외무물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는 것은 (自重自愛)

곧 남을 위하는 것이며, 천하(세상)를 위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긴다면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괴롭힌다면, 이것은 곧 자기 몸을 해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 몸을 진실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自重自愛)

곧 천하를 맡겨도 좋을 것이다. (若可寄天下)

 

 

 

 

 

 

 

 

 

 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視之不見)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 混而爲一, 其上不皦,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恍惚, 迎之不見其, 隨之不見其後, 執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시지불견, 명왈미,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부득, 명왈이, 차삼자, 불가치힐,

고, 혼이위일, 기상불교, 기하불매,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시위황홀, 영지불견지수, 수지불견기후,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視之不見)을 이름하여 '이(夷, 형체가 없음)'라고 한다. (名曰夷)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聽之不聞)을 이름하여 '희(希, 소리가 없음)'라고 한다. (名曰希)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搏之不得)을 이름하여 '미(微, 숨겨져 있음)'라고 한다. (名曰微)

 

이 세 가지는 사람의 감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 (此三者 不可致詰)

 

 

 

(이것들은) 한데 섞이어 '하나(一, 道)'를 이룬다. (混而爲一)

 

그 위는 밝지 않고, (其上不皦)

그 아래는 어둡지 않다. (其下不昧)

 

이어지고 이어져서 이름을 지을 수가 없다. (繩繩不可名)

 

'아무 것도 없는 상태(無物)'로 되돌아가니, (復歸於無物)

 

'모양 없는 모양'이요, (是謂無狀之狀)

'아무 것도 없는 (無物) 형상'이라고 말하다. (無物之象)

 

이것을 '황홀(恍惚)하다(흐리멍덩하다, 어리벙벙하다)'고 말한다. (是謂恍惚)

 

 

맞이해서 보면 그 머리를 볼 수가 없고 (迎之不見其首)

따라가며 보면 그 꽁무니를 볼 수가 없다. (隨之不見其後)

 

 

 

道의 비롯함(古, 근원)을 잡으면 (執古之道)

지금의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以御今之有)

만물의 시원을 알 수 있다.(能知古始)

 

이것을 '道의 벼리(道紀, 道의 본바탕, 본래면목)'이라고 말한다. (是謂道紀)"

 

 

 

 

 

 

 

 

 

 

※Tip!- '시지불견 명왈이 視之不見 名曰夷'와 '청지불문 명왈희 聽之不聞 名曰希'

와 '박지부득 명왈미 搏之不得 名曰微'

 

 

14장은 '道의 오묘함- 황홀함'을 표현하고 있다.

 

 

道는 텅 비어(沖, 虛, 空, 無) 있기 때문에

사람이 눈으로 보는 색깔(), 귀로 듣는 소리(音), 손으로 만져지는 형상(形)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사람의 눈은 너무 큰 것도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것도 보지 못한다.

사람의 귀는 너무 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한다.

사람의 손은 너무 큰 것도 잡지 못하고 너무 작은 것도 잡지 못한다.

 

 

이렇듯 사람의 '감각(오감五感, 안, 이, 비, 설, 신)'이란 불완전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道를 '크다(大)'고 말하자면,

 

"큰 빛은 보이지 않고 (대광무명 大光無明),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성무음 大聲無音),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대상무형 大象無形) "고 말한다.

   

 

 

道를 '작다(小)'고 말하자면,

 

'지극히 미미해서 보이지 않고(夷)'

'지극히 희미해서 들리지 않고 (希)'

'형체가 없어서 잡히지 않는다. (微)'고 말한다.

 

 

 

그래서 道는 불완전한 사람의 '오감五感 (안, 이, 비, 설, 신)'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

(不可致詰)

 

 

 

 

 

 

 

 

※Tip!- '혼이위일 混而爲一'

 

 

한데 섞이어 '하나(一, 道)'를 이룬다. (混而爲一)

 

여기서 '하나(一)'는 '道'를 말한다.

 

 

 

"一卽道 道卽一  일즉도 도즉일"

 

 

"하나(一)에서 시작하지만 이 하나(一)는 시작이 없는 하나(一)이며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

하나(一)에서 끝나지만 이 하나(一)는 끝이 없는 하나(一)이다.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

(『천부경』에서)

 

 

"법성은 원융하여 두 가지 상이 없고 (法性圓融無二相),

모든 법은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며 (諸法不動本來寂),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모든 것이 끊어져 있다. (無名無相絶一切)

(「법성게」에서)

 

 

 

 

 

 

 

 

 

 

※Tip!- '복귀어무물 復歸於無物'과 '시위황홀 是謂恍惚'

 

 

'무물無物'이란 道의 모습인데,

'무형無形, 아무 것도 없다, 어떤 형태가 없다, 텅 비어 있다' 는 뜻이다.

 

 

道가 '황홀(恍惚)하다'는 것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여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있는 것 같다. (似或存)

그래서 (흙탕물처럼) 흐리멍덩하다, 

뭐라 표현하기 어렵고 (엄청나니까) 어리벙벙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Tip!-'집고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여기서 '고'는 '비롯함, 근원'을 뜻한다.

 

 

도의 근원(古)을 잡으면(執, 알면)

지금의 세상(今之有)을 다스릴 수 있고, 만물의 시원(古始)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지금 여기 있는 모든 현상, 만물이 道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의 근원(古之道)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위의 도 無爲之道', 바로 '무위자연 無爲自然'을 말한다.

 

 

앞의 모든 얘기들은 바로 이 '무위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비유적 표현들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야말로 '도의 본바탕'이며 '본래면목'이다. (是謂道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