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4-8.인간세(人間世)
:안합(顔閤)이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태자를 가르치러 가게 되어(顔閤將傳衛靈公太子)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안합(顔閤)이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태자를 가르치러 가게 되었을 때에(顔閤將傳衛靈公太子)
현자 거백옥(蘧伯玉)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而問於蘧伯玉曰)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의 천성이 잔혹하여 죽이기를 좋아합니다.(有人於此其德天殺)
그와 함께 무도한 짓을 하다가는(與之爲無方)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고,(則危吾國)
그와 함께 법도에 맞는 일을 하려다 보면(與之爲有方)
제 몸을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則危吾身)
그의 지혜는 남의 허물은 잘 알지만(其知適足以知人之過)
제 허물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而不知其所以過)
그런 사람을 저는 어찌 대하면 좋겠습니까?"(若然者 吾奈之何)
거백옥이 대답했다.(蘧伯玉曰)
"좋은 질문입니다.(善哉 問乎)
삼가하고 조심하며(戒之 愼之)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正女身哉)
겉으로는 그를 따르는 것이 좋고(形莫若就)
마음은 그와 화합하는 것이 좋습니다.(心莫若和)
비록 그렇다해도 이 두 가지에는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雖然之二者有患)
그를 따르더라도 빠져들지 않아야 하고,(就不欲入)
마음으로 화합하더라도 두드러지게 해서는 안됩니다.(和不欲出)
그를 따르다가 그 무도함에 휩쓸리게 되면(形就而入)
당신은 넘어지고 파멸되고(且爲顚爲滅)
무너지고 엎어질 것입니다.(爲崩爲蹶)
그와 화합하다가 너무 두드러지게 되면(心和而出)
소문이 나고 명성이 되고(且爲聲爲名)
요망한 일이 되어 재앙을 입게 될 것입니다.(爲妖爲蘖)
그가 갓난애처럼 행동하면(彼此爲嬰兒)
당신도 그와 함께 갓난애처럼 행동하십시오.(亦與之爲嬰兒)
그가 분별없는 짓을 하면(彼此爲無町畦)
당신도 그와 함께 분별없는 사람이 되십시오.(亦與之爲無町畦)
그가 끝없이 방탕하면(彼此爲無厓)
당신도 그와 함께 방탕하십시오.(亦與之爲無厓)
여기에 통달하여(達之)
당신은 허물 없는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入於無疵)
당신은 저 사마귀(螳螂)를 알지 못합니까?(汝不知夫螳螂乎)
화(怒)가 나면 팔뚝을 휘두르며 수레바퀴에 맞서지만(怒其臂以當車轍)
제 힘으로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不知其不勝任也)
자기 재주의 뛰어남만을 아는 것이니,(是其才之美者也)
삼가하고 조심할 일입니다.(戒之 愼之)
당신이 재주를 뽐내면 태자의 권위를 침범하게 되어(積伐而美者以犯之)
저 사마귀와 같은 처지가 됩니다.(幾矣)
당신은 저 호랑이를 사육하는 사람을 알지 못합니까?(汝不知夫養虎者乎)
그가 감히 살아있는 짐승을 먹이로 주지 않는 것은(不敢以生物與之)
먹이를 물어죽일 때 사나워지기 때문입니다.(爲其殺之之怒也)
그가 감히 먹이를 통째로 주지 않는 것은(不敢以全物與之)
먹이를 잡아찢을 때 사나워지기 때문입니다.(爲其決之之怒也)
굶주릴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살피고(時其飢飽)
그 사나운 마음을 다스리는데 통달해 있습니다.(達其怒心)
호랑이와 사람은 종류가 다른데도(虎之與人異類)
기르는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은(而媚養己者)
그가 호랑이의 자연스러운 성질을 따랐기 때문입니다.(順也)
그러므로 호랑이가 기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故其殺之者)
호랑이의 자연스러운 성질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逆也)
말을 사랑하는 사람은(夫愛馬者)
광주리로 말똥을 받아내고(以筐盛矢)
큰 조개껍질에 오줌을 받습니다.(以蜄盛尿)
그러다가 마침 모기나 등에가 말 등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適有蚊虻僕然)
불시에 손으로 치면(而拊之不時)
말은 놀라서 재갈을 부수고(則缺銜)
기르는 사람의 머리를 치고 가슴을 걷어찹니다.(毁首碎胸)
말을 사랑하는 뜻은 지극했지만(意有所至)
그가 사랑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었습니다.(而愛有所亡)
그러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可不愼邪)
※'안합(顔閤)'은 노(魯)나라의 현인이며, 『장자(莊子)』에 여러 번 등장한다.
'거백옥(蘧伯玉)'은 위(衛)나라의 대부이며, 공자(孔子)로부터 '군자(君子)'라고 평가받은 인물이다.
"군자로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道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道가 없으면 재능을 거두어 간직해 두는도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위(衛)나라 임금 '영공(靈公, B.C.534 ~ B.C.439년 재위)'의 태자 '괴외(蒯聵)'는
영공의 첩인 남자(南子)를 미워하여 죽일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국외로 달아났다.
영공이 죽은 후, 그가 집권하려고 귀국할 때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막으려다 전사한 일이 있다.
태자 '괴외(蒯聵)'는 자기 아들인 출공(出公)을 내쫓고 스스로 장공(莊公)이 되었지만,
얼마 후 다시 실패하여 망명했다.
안합(顔閤)은 이렇게 '천품이 박덕한(天殺)' 태자의 스승으로 가게 되자 난처하여
거백옥(蘧伯玉)에게 의논하러 갔던 것이다.
※ 거백옥(蘧伯玉)이 대답하기를..
먼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한(正女身哉)' 다음에..
겉으로는, 행동으로는 그를 따르는 것이 좋겠고(形莫若就)
마음으로는 그를 인정하고 그와 화합하는 것이 좋겠다(心莫若和)고 말한다.
여기서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뜻과 주장을 바르게 강직하게 세우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겉으로 보여지고 만져지는 '나'는 비워야 한다.
"태자가 갓난애처럼 유치하게 굴어도
정말 분별없는 짓을 해도
벼랑 끝까지 몰아가 방탕하게 굴어도
당신은 그와 행동을 함께 해야 하고 마음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화(禍)를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바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나(中, 道)'를 바르게 세워야만 합니다.
즉, 어떤 외부의 유혹이나 강압에도 끄달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中, 道)'이 서야 합니다.(養中)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그랬을 때에만 비록 행동으로 태자를 따르더라도
태자의 무도함에 함께 휩쓸려서 파멸하는 일이 없으며,
비록 마음으로 태자를 인정하고 화합하더라도
그것이 소문과 명성이 되어 재앙을 입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거백옥(蘧伯玉)은 안합(顔閤)이 비록 태자의 스승 자리로 가더라도
함부로 태자를 가르치러 들거나, 감히 태자의 뜻을 거역한다면 재앙을 입게 될 것을 알기에,
부디 '삼가하고 조심하는 처신(愼之)'에 통달(達之)하여
'허물없는 경지(無疵)'로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태자의 스승이라는 명분(名)에 끄달려서 행동하지 말고
먼저 '자기 생명을 보전하라'는 것이다.(養生)
왜냐하면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거백옥은 사마귀(螳螂)와 호랑이를 사육하는 사람, 말 기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준다.
사마귀(螳螂)는 사람이 건드려도 달아나기는 커녕
오히려 잔뜩 성을 내며 팔을 벌리고 공격자세를 취하는 묘한 곤충이다.
그것은 사마귀가 자신의 앞다리가 강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레가 달려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맞서다가 그만 바퀴에 깔려 죽고 만다.
그렇듯이, 안합, 당신이 재능과 능력을 과신하여 포악한 권력자에게 맞선다면,
과연 저 사마귀의 운명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삼가하십시오.(愼之)
※ 또한 호랑이를 사육하는 사람은..
호랑이의 포악한 본성, 짐승을 찢어발기는 사나운 본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 사나운 본성을 자극하면 호랑이는 점점 더 사나워지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그런 자연스러운 본성을 알고
그 사나운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 준다면,
호랑이는 자기를 사육하는 사람을 따르게 된다.
이처럼 당신도 권력자의 본성, 그 포악성, 폭력성을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권력자가 자극받았을 때, 점점 더 포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부디 삼가해야만 합니다.(愼之)
※ 또한 말을 기르는 사람이..
평소에 말을 사랑하여 아무리 극진하게 보살펴 주더라도
한 순간의 실수로 말을 놀라게 하면
말은 미쳐 날뛰며 기르는 사람을 해치게 된다.
그것은 말의 성질과 처지를 먼저 충분히 알고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방식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험한 인간세상(人間世)에서
참으로 어려운 처신에 통달하여(達之) '허물없는 경지(無疵)'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대방의 성질, 자연스러운 본성'을 알고 이해해야 하고,
그 '성질에 맞게' 처신하는 것(順也),
그리고 늘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愼之)'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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