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4-6.인간세(人間世)
:섭공자고(葉公子高)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葉公子高將使於齊)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섭공 자고(葉公子高)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葉公子高將使於齊)
공자(仲尼)에게 자문을 구했다.(問於仲尼曰)
"초(楚)나라 임금이 저를 사신으로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王使諸梁也甚重)
그러나 제(齊)나라가 사신을 대하는 태도는(齊之待使者)
겉으로는 공경하지만 속으로는 일을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蓋將甚敬而不急)
보통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기가 어려운데(匹夫猶未可動也)
하물며 제후야 어떻겠습니까?(而況諸侯乎)
저는 이 일로 매우 두렵습니다.(吾甚慄之)
선생님은 일찍이 제게 말씀하시기를(子嘗於諸梁也 曰)
'무릇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凡事若小若大)
올바른 道를 따르지 않으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寡不道以懽成)
만약 일을 이루지 못하면(事若不成)
반드시 사람에게서 벌을 받게 될 것이요,(則必有人道之患)
만약 일을 이룬다고 해도(事若成)
반드시 음양이 상하여 병을 얻게 될 것이다.(則必有陰陽之患)
일이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그 뒤에 탈이 없으려면(若成若不成而後無患者)
오직 德이 있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唯有德者能之)
저는 거친 음식을 먹으며 좋은 것을 찾지 않고(吾食也 執粗而不臧)
불을 때어 밥을 지어도 시원하기를 바랄 것이 없는 형편의 사람입니다.(爨無欲淸之人)
저는 오늘 아침에 왕명을 받고 나서 저녁에 얼음물을 마셨습니다.(今吾朝受命而夕飮氷)
아마 제 속이 타는 것 같습니다.(我其內熱與)
저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吾未至乎事之情)
벌써 음양의 환난을 받고 있습니다.(而旣有陰陽之患矣)
만약 일을 이루지 못한다면(事若不成)
반드시 왕에게서 벌을 받을 테니(必有人道之患)
두 가지 재앙이 겹치는 것입니다.(是兩也)
저는 남의 신하된 사람으로서(爲人臣者)
사신의 직무를 맡기에 부족합니다.(不足以任之)
선생님께서 제게 무언가 좋은 말씀을 해 주십시오."(子其有以語我來)
공자가 말했다.(仲尼曰)
"세상에는 크게 경계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天下有大戒二)
하나는 천명(命)이요,(其一 命也)
하나는 의리(義)입니다.(其一 義也)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천명(命)이며(子之愛親 命也)
마음에서 없앨 수 없습니다.(不可解於心)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리(義)입니다.(臣之事君 義也)
어디를 가도 임금이 없는 곳은 없으니,(無適而非君也)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디로 피할 곳이 없습니다.(無所逃於天地之間)
그래서 '크게 경계할 것(大戒)'이라고 하는 것입니다.(是之謂大戒)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是以夫事其親者)
어려운 처지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모시는 것이(不擇地而安之)
'효(孝)의 지극함'입니다.(孝之至也)
임금을 섬기는 사람은(夫事其君者)
어려운 일을 가리지 않고 편안히 모시는 것이(不擇事而安之)
'충(忠)의 지극함'입니다.(忠之盛也)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는 사람은(自事其心者)
그 앞에서 슬픔과 기쁨을 쉽게 나타내지 않습니다.(哀樂不易施乎前)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知其不可奈何)
숙명(命)으로 여기고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而安之若命)
'德의 지극함'입니다.(德之至也)
남의 신하되고 자식된 사람에게는(爲人臣子者)
본래 마지못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固有所不得已)
그러므로 일의 실정대로 착실히 행하고(行事之情)
자기 몸을 잊어야 합니다.(而忘其身)
어느 겨를에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겠습니까?(何暇至於悅生而惡死)
그러므로 그대는 가는 게 좋겠습니다."(夫子其行 可矣)
※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초(楚)나라의 대부이며,
섭(葉) 땅을 다스렸던 '심저량(沈諸梁)'이란 실재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창작품이다.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초(楚)나라 임금의 명령을 받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서 가는 것이다.
그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자, 몹시 걱정이 되었다.
만약 자신이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임금의 문책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고,(人道之患)
비록 일을 성공시킨다고 해도
지나치게 고심하고 몸과 마음을 혹사해서 큰 병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陰陽之患)
어쩌면 이미 병(病)이 난 것도 같다.
그는 '아침에 왕명을 받고 나서 저녁에 얼음물을 들이킬 정도(飮氷)'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속이 타고,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핑계를 대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지 않을.. 뾰족한 방법도 없다.
섭공자고(葉公子高)는 평소 거친 음식을 먹으며 땔감도 절약하며
검소하게 수양하며 살았지만,
복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재앙을 받게 되었다고, 공자에게 하소연 한다.
※ 그런데 공자(仲尼.. 실제로는 莊子)는..
세상에는 '크게 경계할 일', 혹은 '지켜야 하는 일', '큰 법칙(大戒)'이 있는데,
바로 '천명(命)'과 '의리(義)'라고 말한다.
'천명(命)'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자연적이며 본래적인 것'이다.
혹은 '운명, 숙명'이라고도 말한다.
장자(莊子)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즉, '효(孝)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타고난 것, 본래적인 것, 운명적인 것,
즉 '천명(命)'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의리(義)'는 자연적이거나 본래적이지 않은 관계,
즉 '사회적인 관계'에서..
특히 '군신(君臣)관계'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행동원리다.
흔히 '충의(忠義)'라고 말한다.
본래 '지극한 효(孝)'는..
자식된 사람이 자신의 형편을 탓하지 않으며.. 부모를 편안히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지극한 충(忠)'은..
남의 신하된 사람이 일의 쉽고 어려움을 탓하지 않으며..
임금의 뜻을 받들어 실행하는 것이다.
장자(莊子) 역시 고대(古代) 동양 사상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일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뒤에 탈이 나지 않는
'德있는 사람의 비결'을 묻지만,
공자(仲尼, 실제로는 莊子)는.. 엉뚱하게도
'지극한 덕(德)을 가진 사람'은... 일의 실정에 맞게 착실하게 행할 뿐,
'자기 몸의 안위를 잊어야 한다(忘其身)'고 말한다.
일이 잘못되어 벌이라도 받을까,
일을 하다가 병이라도 날까,
그런 생각은 모두 잡념(雜念)에 불과하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남의 신하된 사람과 자식된 사람에게는
의리(義)와 천명(命)이라는
본래 피할 수 없는 일, 마지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극한 덕(德)을 가진 사람'은..
눈 앞의 일로 쉽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사로움(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명령을 받으면 숙명으로 여기고(若命)..
편안하게.. 망설이지 않고 태연스럽게.. 명령을 좇는다. (安之)
오히려 '어느 겨를에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겠느냐'고 되묻는다.
※ 이것은 평소 유가(儒家)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비웃고..
'양생(養生)의 道'를 강조하던 장자(莊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장자(莊子)는 여기서.. 충효(忠孝)나 대의명분 자체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의 방점은.. 뒤에 나오는..
'승물이유심(乘物以遊心)'과 '탁부득이이양중(託不得已以養中)'에 있다.
즉, '외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으로..(乘物以遊心)
안으로 道(中正)를 키우며..(養中)
마지못할 일을 몸으로 감당한다(託不得已)'.. 는
또 하나의 '무사(無私)',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실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장자(莊子)철학의 아주 적극적인 면인데..
道를 떠나서는 안 되지만, 인간(人間)을 떠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세상(人間世)에서..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길,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은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걸어나간다..
다만 그 발자취를 남기지 않을 뿐이다..
흔히 도가(道家)를 '은자(隱者)의 철학'이라고 말하는데..
그 은자들은 산 속에 숨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세상 속에..
속세(俗世) 안에 숨어있다..
그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 목수, 백정, 불구자.. 그런 민중(民衆)의 모습으로..
바로 '민중의 지혜'로 숨어있다.
도가(道家)는 결코 인간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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