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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5-5.덕충부(德充符):위(衛)나라에 추하게 생긴 사람이 있는데(衛有惡人焉)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8. 4. 12.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5-5.덕충부(德充符):

위(衛)나라에 추하게 생긴 사람이 있는데(衛有惡人焉)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이기동, 동인서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仲尼)에게 물었다.(魯哀公問於仲尼曰)

"위(衛)나라에 추하게 생긴 사람이 있는데(衛有惡人焉)

그 이름이 '애태타(哀駘它)'라고 합니다.(曰哀駘它)

남자들이 그와 함께 지내면(丈夫與之處子)

그를 사모하여 떠나지를 못합니다.(思而不能去也)

여자들이 그를 보고 자기 부모에게 청하기를(婦人見之 請於父母曰)

다른 사람의 처가 되느니 차라리 그의 첩이 되겠다고 하는 이가( 與爲人妻 寧爲夫子妾者)

수십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十數而未止也)

그가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未嘗有聞其唱者也)

언제나 사람들과 화합한다고 합니다.(常和人而已矣)

그에게는 남을 죽음에서 구해줄 만한 임금의 지위도 없고,(無君人之位以濟乎人之死)

남의 배를 채워줄 만한 재산도 없습니다.(無聚祿以望人之腹)

게다가 그의 추한 모습은 천하가 다 놀랄 지경입니다.(又以惡駭天下)

그는 남과 화합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和而不唱)

그의 지식은 그가 살고 있는 지방을 벗어나지 않습니다.(知不出乎四域)

그러나 수많은 남녀가 따르는 것을 보면(且而雌雄合乎前)

그에게는 확실히 남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是必有異乎人者也)

과인이 그를 불러서 보았더니(寡人召而觀之)

과연 그 추한 외모가 천하를 놀라게 할 만 했습니다.(果以惡駭天下)

그러나 그와 함께 지낸지 한 달이 못 되어(與寡人處 不至以月數)

과인은 그의 사람됨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而寡人有意乎其爲人也)

그리고 일 년이 못 되어 과인은 그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不至乎期年 而寡人信之)

마침 나라에 재상의 자리가 비어서(國無宰)

과인은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고 했습니다.(寡人傳國焉)

그런데 그는 내키지 않는 듯 겨우 승낙은 했지만(悶然而後應)

멍한 모습이 마치 사양하는 듯 했습니다.(氾然而若辭)

과인은 부끄러웠지만 기어이 나라를 맡겼습니다.(寡人醜乎 卒授之國)

얼마 안 가서 그는 과인을 떠나가 버렸습니다.(無幾何也 去寡人而行)

과인은 슬픔에 잠겨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하고(寡人술焉 若有亡也)

나라를 다스리는 즐거움을 함께 할 사람이 없는 듯 합니다.(若無與樂是國也)

대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是何人者也)



공자(仲尼)가 말했다.(仲尼曰)

"제가 일찍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간 일이 있습니다.(丘也嘗使於楚矣)

그 때 가는 길에 마침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適見㹠子食於其死母者)

새끼들은 조금 있다가 모두 어미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少焉현若 皆棄之而走)

어미가 돌보아주지 않고(不見己焉爾) 

자기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不得類焉爾)

새끼들이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겉모습이 아니라(所愛其母者非愛其形也)

그 몸을 부리는 마음(德)을 사랑한 것입니다.(愛使其形者也)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는(戰而死者 其人之葬也)

운삽(翣)을 쓰지 않습니다.(不以翣資)

발꿈치가 잘린 사람은 신발을 좋아하지 않는 법입니다.(刖者之屨 無爲愛之)

그 근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皆無其本矣)

천자를 모시는 후궁들은(爲天子之諸御)

손톱을 깎지 않고 귀도 뚫지 않습니다.(不爪翦 不穿耳)

 처(妻)를 얻은 사람은 부모의 집 밖에 나가 살며(取妻者止於外)

자꾸 심부름을 시키지 않습니다.(不得復使)

겉모습만 온전해도 이처럼 대접을 받는데(形全猶足以爲爾)

하물며 덕이 온전한 사람이야 어떠하겠습니까?(而況全德之人乎)

지금 애태타(哀駘它)는 말하지 않아도 신뢰를 받고(今哀駘它未言而信)

아무런 공로 없이도 사람들과 친해집니다.(無功而親)

남이 자기 나라를 맡기면서(使人授其國)

오히려 받지 않을까봐 염려합니다.(唯恐其不受也)

그는 틀림없이 재질(才)이 온전하고

德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是必才全而德不形者也)




※ '애공(哀公)'은 춘추시대 말에 노(魯)나라를 다스린 군주였다.

'공자(孔子)'는 말년에 노(魯)나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시기에 애공(哀公)과 나누었던 문답들이 여러 설화들로 전해져 온다.  

 

여기서 '애태타(哀駘它)'는 성이 애(哀)이고, 이름이 '어리석을 태(駘)', '낙타의 등 타(它)'이니,

낙타처럼 등이 불룩한 '꼽추'라는 의미가 된다.

즉, 그는 못생긴 외모에 꼽추인.. 불완전한 몸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서 '악인(惡人)'은 용모가 추한 사람을 말한다.


 

'애태타(哀駘它)'는 그의 겉모습만을 본다면..

권력도 없고, 재산도 없고,

게다가 천하가 놀랄 정도로 못생겼고, 스스로 무엇을 주장하는 언변도 없고, 

그의 지식은 그가 사는 지역을 넘어서지 않을 만큼..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 그에게는 높이 평가해 줄 만한 어떤 가치나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는 오히려 온전치 못한 사람, '쓸모없는(無用)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그런데 왠일인지 남자들은 그와 함께 지내면 그를 떠나려 하지 않고, 

여자들은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그의 첩이 되고 싶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며, 기꺼이 그의 곁에 머무르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애공(哀公)조차도..

애태타(哀駘它)가 떠나버리자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가슴이 텅 비고 허전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애공(哀公)은 그런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며,

애태타(哀駘它)는 과연 어떤 사람이냐고 공자에게 되묻는다. 




※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애태타(哀駘它)는 틀림없이 '재질이 온전하고(才全),

德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사람(德不形者)'이라고 말한다.


애태타(哀駘它)는 남과 짝이 되어주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었다.(和而不唱)



여기서 '창(唱)'은..

①(시나 노래를) 먼저 부르다.  ②먼저 말을 꺼내다, 앞서서 주장하다. ③자기를 내세우다.. 는 뜻이다.


또한  '화(和)'는.. ①(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에 화답하여 부르다.

②(말을 꺼내거나 어떤 주장을 하면) 거기에 응답하다.

③(누군가의) 짝이 되어 어울려 주다. 화합(和合)하다.. 는 뜻이다.


그래서 '창화(唱和)'란.. 시나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에

 한쪽에서 먼저 부르고 거기에 화답하여 따라 부르는 방식을 말한다.



 

※ 그렇게 애태타(哀駘它)는 자기를 내세우거나 주장하는 법이 없고..

기꺼이 다른 사람의 짝이 되어 주었다. 즉, 그는 '화이불창(和而不唱)'했다.


그런데 '화이불창(和而不唱)'하려면.. 적어도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내가 없어야(無我, 無爲)'만 한다.


그것은 '텅 비어 고요해야만(虛, 無, 沖)'.. 지속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실제로는 莊子는..)

 애태타(哀駘它)가 '하늘로부터 받은 재질, 德이 온전한 사람(才全)'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작위로 인해 그 '천품(天稟)'이 손상되지 않은 사람이다. 

'천진天眞한' 사람이다.)


또한 그 德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만큼.. 수양이 된 사람(德不形者)이라고 말한다.




※ 공자(孔子)의 입을 빌어서.. 장자(莊子)는 계속해서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의 온전함보다는..

그 겉모습을 움직이는 '(내면의) 德의 온전함'이 더 중요하다고...



새끼 돼지가 어미 돼지를 사랑하는 것은..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겉모습을 움직이는 (내면의) '어미의 마음, 어미의 德과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어미의 德이 사라지자, 새끼 돼지들은 도망쳤다.




※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은 그 시신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장례를 치룰 때 그 관을 꾸미지 않는다. 

또한 발꿈치가 잘려서 절름발이가 된 사람은 신발을 보내주어도 기뻐하지 않는다.

시신과 발이 근본이고, 관이나 신발은 겉모습에 불과한 것이다.


근본을 잃고 나서 겉모습을 꾸민다 해도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천자(天子)를 모시는 후궁들은 손톱과 앞머리를 깎지 않고,

귀를 뚫지 않는데.. 그것은 몸이 온전한 것을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장가 간 아들에게 살림을 내어 주고, 이것 저것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는 것도

혼인을 통해 그 몸이 온전해졌기 때문이다.



겉모습에 불과한 '몸'이 온전해도.. 이처럼 대접을 받거늘,

하물며 그 몸을 움직이는 '내면의 德'이 온전한 사람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겠는가?



애태타(哀駘它)가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그 '德의 온전함' 때문이었다. 


 


애태타(哀駘它)는 그 德이, 재질이 온전하면서도

그 德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만 '화이불창(和而不唱)'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없이도, 굳이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굳이 공을 세우려 들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된 일이다.


애공은 애태타(哀駘它)를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 그에게 억지로 나라를 맡겼지만,

얼마 후, 애태타(哀駘它)는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自然, 無爲) 된 일이다.



"높은 德은 德을 베푸는 바가 없어서(德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래서 德이 있다.(上德不德 是以有德)

낮은 德은 德을 잃지 않아서(德을 베푸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서)

그래서 德이 없다.(下德不失德 是以無德)"


(-『노자(老子)』 38장에서)


그러므로.. 애태타(哀駘它)는 '상덕(上德)'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