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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5-2.덕충부(德充符):그는 자신을 위해서(彼爲己)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8. 3. 12.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5-2.덕충부(德充符):그는 자신을 위해서(彼爲己)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이기동, 동인서원)




 


'덕충부(德充符)'란?


내면의 德이 충일(充溢)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때, 내면의 '德'과 겉으로 드러나는 '징표, 징험()'이

마치 '신표(信標,符)를 맞추는 것'처럼 서로 꼭 들어맞게 된다.(德充之)

   


德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형체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自然(道, 德, 天)'에 노닐기 때문에

세속(世俗)의 인정(人情)에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안으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빠지지 않고

밖으로는 옳고 그름의 시비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덕충부(德充符)에서.. 장자(莊子)는 왕태(王駘), 애태타(哀駘它) 같은 

절름발이, 곱추, 추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일부러 등장시키고

그들의 내면 속 '충만한 德'을 드러낸다.


그렇게 해서 겉모습과 현상에 쉽게 의존하고 현혹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상계(常季)가 다시 물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彼爲己)

지혜로 마음(心)을 터득하고(以其知得其心)

그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常心)'을 터득했을 뿐인데,(以其心得其常心)

어째서 사람들은 그에게로 모여드는 것일까요?"(物何爲最之哉)



공자(仲尼)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보지 않고(人莫鑑於流水)

고요한 물에 비춰본다네.(而鑑於止水)

스스로 고요해야 뭇 사람을 고요하게 할 수 있지.(惟止能止衆止)

땅에서 목숨받은 것들 가운데(受命於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여름과 겨울에 늘 푸르고(惟松柏獨也正)

하늘에서 목숨받은 사람들 가운데(受命於天)

오직 순임금이 홀로 올바라서(惟舜獨也正)

다행히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幸能正生)

뭇 사람의 삶을 바르게 할 수 있었네.(而正衆生)

하늘이 주신 본래의 성품(始, 道)을 보전한 사람이 드러나는 모습은(夫保始之徵) 

두려움이 없다는 것일세.( 不懼之實)

용감한 병사 한 사람이(勇士一人)

적의 대군(九軍)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니,(雄入於九軍)

명예를 얻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將求名而能自要者)

이와 같은데,(而猶若是)

하물며 하늘과 땅을 거느리고(而況官天地)

만물을 포용하며(府萬物)

제 육신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여기며(直寓六骸)

듣고 보는 것을 허상으로 여기며(象耳目)

아는 것을 모두 하나(一)로 여기며(一知之所知)

마음이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而心未嘗死者乎)

그분은 날을 가려 이 세상을 떠나려 할 것이네.(彼且擇日而登假)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겠지만,(人則從是也)

그분이 어찌 사람들이 모시는 것을 즐겨 하시겠는가?(彼且何肯以物爲事乎)




※여기서 '위기(爲己)'는 '자신을 위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말했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했는데(古之學者爲己)

요즘의 배우는 사람은 남을 위한다.(今之學者爲人)"  


훗날 정자(程子)가 이 대목을 풀이했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공부하다가 마침내 남을 이루어주었고,

(古之學者爲己 其終至於成物)

요즘의 배우는 사람은 남을 위하다가 마침내 자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今之學者爲人 其終至於喪己)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는 것(爲己)'이 언뜻 이기적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남을 이루어주는(成物)' 유일한 길이다.


왕태(王駘)는 '자기를 위해(爲己)' 수양한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 왕태(王駘)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그는 '한결같은 마음(常心)'을 깨달았다.


'상심(常心)'은 어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리 저리 끄달리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이니.. 바로 '깨달은 마음'이다.


왕태(王駘)는 '확철대오(確哲大悟)'한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맑고 고요한 물처럼'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비춰줄 수가 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고요해지는 까닭이다.

 



※ 하늘이 주신 '본래의 성품(始, 道)'을 보전하고 있는 사람의 징표는

그 마음에 '두려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과 땅의 주인으로 만물을 포용하기에.. 두려움이 없다..

그는 제 육신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기기에.. 두려움이 없다..

그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허상(象, 虛像)에 불과한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나(一)로 여기기에.. 아무 두려움이 없다..

 

그의 마음은 이미 삶과 죽음을 넘어섰다.. 초월했다..


그러므로 왕태(王駘)는 '자신이 선택한 날에, 날을 가려서(擇日)'..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오를 것이다..(登假,登遐)



여기서 '등하(登假, 登遐)'는...

 ①'죽다, 이승을 떠나다, 천화하다'는 의미가 있다.


'등(登)'은 '올라가다'는 뜻이며, '하(假, )'는 '떨어진다'는 뜻이다.

즉,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뜻인데,

'혼승백강(魂昇魄降)'이라고 하여..

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위로 올라가 신명계로 가고,

백(, 몸)은 아래로 내려가 땅에 묻힌다고 믿었다.

'혼비백산(魂飛魄散)'도 같은 의미다.  


 ② 도가(道家)의 이상적인 죽음인..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왕태(王駘)는 깨달음을 통해 그 마음이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니,

같은 죽음이라고 해도.. 도가(道家)의 완성된 인간인 '신선(神仙)'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羽化登仙)'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