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5-3.덕충부(德充符):신도가(申徒嘉)는 올자(兀者)인데(申徒嘉兀者也)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이기동, 동인서원)
신도가(申徒嘉)는 올자(兀者)인데(申徒嘉兀者也)
정(鄭)나라 재상인 자산(子産)과 함께(而與鄭子産)
백혼무인(伯昏無人)에게서 배웠다. (同師於伯昏無人)
자산(子産)이 신도가(申徒嘉)에게 말했다.(子産謂申徒嘉曰)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는 머물러 있고(我先出則子止)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겠네."(子先出則我止)
다음날 또 두 사람이 한 방에서 자리를 같이하게 되자,(其明日又與合堂同席而座)
자산(子産)이 신도가(申徒嘉)에게 말했다.(子産謂申徒嘉曰)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는 머물러 있고(我先出則子止)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겠네.(子先出則我止)
이제 나는 나가려고 하는데(今我將出)
자네는 머물러 있을텐가, 어쩔텐가?( 子可以止乎 其未耶 )
자네는 재상(執政)인 나를 보고도 피해 서지 않으니(且子見執政而不違)
자네는 재상과 신분이 같다고 생각하는가?(子齊執政乎)
신도가(申徒嘉)가 대답했다.(申徒嘉曰)
"선생님의 문하에 언제 재상의 자리가 있던가?(先生之門 固有執政焉如此哉)
자네는 권력자라는 걸 내세우며 남을 업신여기고 있구려.(子而說子之執政而後人者也)
내가 듣기로(聞之曰)
거울이 맑게 비추는 것은 먼지와 때가 끼지 않았기 때문이며(鑑明則塵垢不止)
먼지와 때가 끼면 거울이 맑지 않다고 하였네.(止則不明也)
오랫동안 어진 분과 함께 생활하면 허물이 없어져야 할 것인데,(久與賢人處 則無過)
지금 자네는 선생님의 큰 道를 섬긴다고 하면서(今子之所取大者 先生也)
그런 말을 하다니, 잘못이 아닌가?"(而猶出言若是 不亦過乎)
자산(子産)이 말했다.(子産曰)
"자네는 이미 그 꼴이 되어서도(子旣若是矣)
감히 저 요(堯)임금과 착함을 겨루려고 하는가?(猶與堯爭善)
자신의 德을 헤아려 스스로 반성할 줄도 모른다는 말인가?"(計子之德 不足以自反也)
신도가(申徒嘉)가 대답했다.(申徒嘉曰)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며(自狀其過)
형벌을 받은 게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以不當亡者衆)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지 않으며(不狀其過)
형벌을 받지 않은 게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적다네.(以不當存者寡)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知不可奈何)
편안히 운명을 따르는 것은(而安之若命)
오직 德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네.(唯有德者能之)
예(羿)의 활의 사정거리 안에서 노닐면(遊於羿之彀中)
그 안은 모두 화살을 맞을 자리지만,(中央者中地也)
그런데도 맞지 않는다면 운명이라네.(然而不中者命也)
사람들 중에는 온전한 두 발을 가졌다고 해서
내 온전치 못한 발을 비웃는 사람이 많네.(人以其全足笑吾不全足者 多矣)
그럴 때마다 나는 발끈 화가 치솟았지만,(我怫然而怒)
선생님이 계신 데로 나아가면(而適先生之所)
다 잊고 돌아온다네.(則廢然而反)
선생님께서 훌륭한 德으로 나를 씻어주셨기 때문인지 모르겠네.(不知先生之洗我以善耶)
내가 선생님을 따른지 십구 년이 되었지만(吾與夫子遊十九年矣)
선생님은 아직 내가 올자인지 모르시는 것 같네.(而未嘗知吾兀者也)
지금 자네와 나는(今子與我)
육체의 내면으로 (德으로) 사귀어야 하거늘(遊於形骸之內)
자네는 내 겉모습만 보고 따지려 드니(而子索我於形骸之外)
또한 잘못이 아닌가?"(不亦過乎)
자산(子産)은 부끄러운 듯 낯빛을 고치고
몸을 바로잡으며 말했다.(子産蹙然改容更貌曰)
"더 말을 말아주게."(子無乃稱)
※ '신도가(申徒嘉)'는 성이 '신도(申徒)', 이름이 '가(嘉)이며,
장자(莊子)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신(申)'을 '사(司)'의 음전(音轉)으로 보고
'사도(司徒, 申徒)'라는 높은 벼슬에 있다가 형벌을 받아 절름발이가 된 사람이라고 읽기도 한다.
'자산(子産)'은 실존인물이며,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교(僑)'다.
그는 춘추시대(B.C.7)에 활약했던 정(鄭)나라의 명재상이다.
'백혼무인(伯昏無人)' 역시 장자(莊子)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여기서 신도가(申徒嘉)와 자산(子産)은 모두
백혼무인(伯昏無人)이라는 한 스승에게서 동문수학(同門修學)하는 제자들이다.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자산(子産)은 재상이라는 높은 신분인데도
道를 구하기 위해 백혼무인(伯昏無人)에게 와서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세속적인 가치와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자산(子産)은 절름발이 신도가(申徒嘉)와 함께 배우며 어울린다는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공부가 끝난 뒤, 방을 나갈때 신도가(申徒嘉)에게 말한다.
"내가 방에서 나갈 때, 자네는 뒤에 남아있어 주겠나?
아니면 자네가 먼저 방을 나가겠나? 그러면 내가 남아 있겠네.
도대체 자네는 재상을 보고도 비켜설 줄 모르니, 자네는 재상과 맞먹겠다는 것인가?
(부디 자네의 처지에 맞게 알아서 행동해 주게나.
나는 자네 때문에 체면이 깎이고 싶지 않네.)"
어쩌면 자산(子産)은 자신의 높은 신분에 맞는.. 세속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자산(子産)이 보기에 신도가(申徒嘉)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우리 선생님의 문하에 재상의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던가?"
(우리 스승님의 가르침 속에 그런 사회적 차별이 있던가?)
한 스승에게서 배우는 제자들은 그 사회적 신분과는 상관없이
서로 대등하게 교유(交遊)하는 것이 학문의 전통이다.
그것은 공자(孔子)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유교무류(油敎無類)'는..
'오직 스승의 가르침이 있을 뿐, 부류(신분적 차별)는 없다'는 뜻이다.
공자(孔子) 이전에는 오직 왕족, 귀족의 자제들만이 학문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부류(同類)'인 것이다.
그런데 공자(孔子)는 제자의 출신이 권력자의 자제이든,
농민의 자식이든, 천민 출신이든 가리지 않고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아무 차별없이 가르쳤다.
그래서 '무류(無類, 부류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신도가(申徒嘉)는 바로 이런 '학문하는 자세',
'구도(求道)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다.
※ 그런데 자산(子産)은 친구의 말이 옳기에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독하게 쏘아 붙인다.
"가(嘉), 자네는 죄를 짓고 형벌을 받아 절름발이 병신이 되었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런 자기 꼴은 생각지도 않고, 스스로 반성할 줄도 모른단 말인가?"
그 말에 신도가(申徒嘉)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세상에는 자기 잘못을 변명하면서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은 게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네.
하지만 자기 잘못을 변명하지 않으며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네."
(여보게, 나는 내 죄를 알고 인정하며 마땅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나는 변명하지 않았네. 그 죄를 달게 받았네.)
"세상에는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네.
활 쏘는 사정거리 안에 있으면 활을 맞게 되는 것이라네.
그런데도 활을 맞지 않았다면 그것은 운명이라네."
(지금 세상은.. 수십 년 간 전쟁이 계속 되니,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요행이며,
나라의 폭정이 극심하니, 백성이 죄를 면하기가 지극히 어렵네.
그런데도 아직 자네의 두 발이 온전한 것은..
자네의 德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네의 운명이라네.)
※ "두 발이 모두 온전한 사람이 나의 불구를 비웃을 때
나 역시 발끈하고 화가 나지만,
스승님을 뵈오면 그런 감정이 다 사라지고 다시 맑은 거울이 된다네.
아마도 스승님께서 훌륭한 德으로 나를 치유해 주신 것인지도 모르지.
내가 스승님께 배운 지 19년이 되어가는데
스승님은 아직 내가 절름발이인 것을 모르시는 것 같네."
(스승님은 나를 차별하시지 않고, 나를 겉모습으로 판단하시지 않는다네.
스승님의 道를 배우는데 나의 신체적 불구와 사회적 신분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네.)
자산(子産)은 낯빛을 고치고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더 말을 말아주게.
(내 자신이 부끄러우니, 더 말하지 말아주게. 다 알아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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