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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5-4.덕충부(德充符):노(魯)나라에 숙산무지(叔山無趾)라는 올자가 있었는데(魯有兀者叔山無趾)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8. 4. 2.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5-4.덕충부(德充符):

노(魯)나라에 숙산무지(叔山無趾)라는 올자가 있었는데(魯有兀者叔山無趾)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이기동, 동인서원)




노(魯)나라에 숙산무지(叔山無趾)라는 올자가 있었는데(魯有兀者叔山無趾)

 공자(仲尼)를 찾아왔다.(踵見仲尼)


공자(仲尼)가 말했다.(仲尼曰)

"그대는 일찌기 삼가지 않아서(子不謹)

죄를 지어 (몸이) 그처럼 되었거늘(前旣犯患 若是矣)

이제 나를 찾아온다 해도 어찌 하겠는가?"(雖今來 何及矣)


무지(無趾)가 대답했다.(無趾曰)

"나는 힘써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吾唯不知務)

몸을 가벼이 놀려 이처럼 발을 잃었소.(而輕用吾身 吾是以亡足)

이제 내가 온 것은(今吾來也) 

아직 발보다 존귀한 것이 있어서였소.(猶有尊足者存)

나는 그것을 힘써 온전히 지니고자 하오.(吾是以務全之也)

무릇 하늘은 덮어주지 않는 것이 없고(夫天無不부)

땅은 실어주지 않는 것이 없소.(地無不載)

나는 선생을 하늘과 땅으로 삼고자 왔는데(吾以夫子爲天地)

선생이 이 정도의 사람인 줄은 알지 못했소."(安知夫子之猶若是也)


공자(孔子)가 말했다.(孔子曰) 

"내 생각이 좁았소.(丘則陋矣)

선생, 어찌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소?(夫子胡 不入乎)

내 들은 바를 얘기해 드리리라."(請講以所聞)



무지(無趾)가 나간 뒤에 공자(孔子)가 말했다.(無趾出 孔子曰)

"제자들아, 힘써 배워야 한다!(弟子勉之)

무지(無趾)는 올자인데도 오히려 배움에 힘써서(夫無趾兀者也 猶務學)

지난 날의 잘못을 갚고자 한다.(以復補前行之惡)

하물며 몸이 온전한 너희들이야 어떠해야 하겠느냐?"(而況全德之人乎)



(훗날에) 무지(無趾)가 노담(老聃)을 찾아가 말했다.(無趾語老聃曰)

"공자(孔丘)는 지인(至人)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孔丘之於至人 其未耶)

그는 어째서 자꾸 선생님께 배우려고 하는 걸까요?(彼何賓賓以學子爲)

그는 괴이하고 헛된 명성을 구하려 애쓰지만,(彼且蘄以諔詭幻怪之名聞)

지인(至人)은 그것을 자기를 구속하는 질곡(桎梏)으로 여기는 줄 모릅니다."(不知至人之以是爲己桎梏耶)


노담(老聃)이 말했다.(老聃曰)

"자네는 어째서 그로 하여금 죽음과 삶을 한 가지로 여기고,(胡不直使彼以死生爲一條)

옳고 옳지 않음이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以可不可爲一貫者)

그의 질곡을 벗겨주지 않았는가? 그러면 되지 않는가?"(解其桎梏 其可乎)


그러자 무지(無趾)가 말했다.(無趾曰)

"하늘이 그에게 형벌(天刑)을 내린 것입니다.(天刑之)

제가 어찌 벗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安可解)




※ '숙산무지(叔山無趾)'는 성이 숙산(叔山)이며, 이름이 무지(無趾)다.

'무지(無趾)'는 '발이 없다'는 뜻이니, 그가 올자(兀者, 절름발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장자(莊子)가 창조해 낸 인물이며, 道人이다.



이런 무지(無趾)가 공자(孔子)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공자(孔子)는 무지(無趾)가 전에 잘못을 저질러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거절한다.



물론 실제의 공자(孔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모습은

아무리 세상의 평가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그가 와서 배우기를 원하면

공자(孔子)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공자(孔子)의 문하에는 절름발이는 물론, 천민 출신의 제자까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장자(莊子)가 권위적이고 세속적인 명성을 추구하는 스승의 모습으로

공자(孔子)를 설정한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여기서 노담(老聃)'은 '노자(老子)'라고 본다.


노자(老子)의 실제 이름과 그의 생몰연대, 구체적인 삶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노자(老子)의 '노(老)'는 성(姓)이 아니라, 형용사로 본다.

즉, '노자(老子)'는 '늙은이', '옛날 사람', '아주 오래 산 사람'이란 뜻이 된다.


『도덕경(道德經) 81장』을 쓴 '노자(老子)'라는 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실천한 스승이며,

그는 무아(無我), 무공(無功), 무명(無名)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세상에 밝히지 않았다.


『도덕경(道德經) 81장』도 후대에 그의 제자들이 쓴 것이다.

 그는 다만 제자들에게 '노(老)선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워졌던 사람이다.



여기서 장자(莊子)는 '노자(老子)와 공자(孔子)의 철학적 입장'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서 말하고 있다.

물론 장자(莊子)는 '도가(道家),' 즉 노자(老子)의 제자 그룹에 속한 사람이다.




 ※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는..

"공자(孔子)가 노자(老子)를 만나 상례(喪禮)에 대해 배웠다"는 기사가 있다.

그런데 『예기(禮記)』는 유가(儒家)의 경전이므로..

즉, 공자(孔子)의 제자들이 쓴 것이니.. 이것은 믿을만한 사실일 것이다.



또한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事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도..

"공자(孔子)가 엄히 섬겼던 분으로

주(周)나라의 노자(老子), 초(楚)나라의 노래자가 있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또한 사기(事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공자(孔子)가 주(周)나라로 가서 예(禮)에 관한 것을 물었을 때 (즉, 배움을 청했을 때)

바로 노자(老子)를 만나서 그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 때 노자(老子)가 떠나는 공자(孔子)를 전송하면서 한 말이 기사로 나온다.


"내가 듣기에 부귀한 사람은 남에게 재물을 주어 전송하지만,

어진 사람은 남에게 말(言)로써 전송한다고 들었소.

나는 부귀하지 못한 사람이니, 외람되게도 어진 사람을 흉내내어  

당신을 말로써 전송할까 하오.

총명하고 사리(事理)를 깊이 살피지만 죽음에 가까이 가는 사람이란

곧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요,

언변이 뛰어나고 널리 명성을 얻지만 자기 몸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란

곧 남의 단점을 잘 들추어내는 사람이라오.

그러니 자식된 사람으로서 자기 고집이나 자기 생각만 해서는 안 되며,

신하된 사람으로서 자기 고집이나 자기 생각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오."




※ 그러므로 여기서 무지(無趾)가 노담(老聃, 老子)을 만나서..

 

"공자(孔丘)는 지인(至人)이 되려면 멀었습니다.

그는 어째서 자꾸 선생님께 배우려고 하는 걸까요?

그는 괴이하고 헛된 명성(諔詭幻怪)을 추구합니다.

지인(至人)은 그런 명성을 자기를 구속하는 수갑과 차꼬(桎梏)로 여기는 줄 그는 아직 모릅니다."

 


라고 말한 것은.. 도가(道家)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질곡(桎梏)'은 손과 발을 매어두는 형틀이니, '차꼬와 수갑'을 말한다.




그러면서 무지(無趾)는.. 공자(孔子)가 그러한 질곡(桎梏)의 길,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은..

하늘이 그에게 주는 '형벌(天刑)'이니, 

자신도 그것을 풀어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언뜻 장자(莊子)가.. 공자(孔子)의 삶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폄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장자(莊子)는..  

그것이 공자(孔子) 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의 길, 천형(天刑)의 길이란 것을

깊이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자와 장자, 두 사람 모두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2천 년 이상 변함없이

큰 사랑을 받아 온.. 대스승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