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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도덕경(道德經)

노자이야기- 77장. 하늘의 道는 활에 시위를 얹은 것과 같구나(天之道 其猶張弓與)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6. 12. 9.





포인세티아





노자이야기- 77장. 하늘의 道는 활에 시위를 얹은 것과 같구나(天之道 其猶張弓與)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 抑之 下者 擧之 有餘者 損之 不足者 補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則不然 損不足而奉有餘 孰能有餘 以奉天下 唯有道者

是以 聖人 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 억지 하자 거지 유여자 손지 부족자 보지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 즉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 이봉천하 유유도자

시이 성인 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

 

    

 

"하늘의 道는(天之道)

마치 활에 시위를 얹는 것과 같구나.(其猶張弓與)

높은 데는 누르고,(高者 抑之)

낮은 데는 들어올리고,(下者 擧之)

남은 것은 덜고,(有餘者 損之)

모자란 것은 채운다.(不足者 補之)

 

하늘의 道는 남은 것을 덜어(天之道 損有餘)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데,(而補不足)

사람의 道는 그렇지 않아서(人之道 則不然)

(오히려)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편에 갖다 바친다.(損不足而奉有餘)


누가 능히 남는 것으로(孰能有餘)

천하를 받들 것인가?(以奉天下)

오직 道와 하나된 사람만이 그럴 수 있다.(唯有道者)

 

이런 까닭에 聖人은(是以 聖人)

일을 하여도 자랑하지 않으며, (爲而不恃)

공(功)을 이루어도 머무르지 않으니,(功成而不處)

그 현명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其不欲見賢)"

  


  

    

 


  


  

※Tip!- '천지도 기유장궁여 天之道 其猶張弓與'




"하늘의 道는(天之道)

마치 활에 시위를 얹는 것과 같구나.(其猶張弓與)"




'기유장궁여(其猶張弓與)'는 활에 시위를 얹고 활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을 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활대의 높은 쪽은 누르고 낮은 쪽은 들어올리며,

힘이 들어간 데는 덜어내어 모자란 데에 보태주는 등..'균형(均衡)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0점의 상태'이다.



즉,'기유장궁여(其猶張弓與)'는 

 '조화(造化)'와 '균형(均衡)'과 '형평(衡平)'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완전히 집중되고 균형이 잡힌 상태에서는

어떤 잡념이나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자연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道'다. 하늘의 道다.










"높은 데는 누르고,(高者 抑之)

낮은 데는 들어올리고,(下者 擧之)

남은 것은 덜고,(有餘者 損之)

모자란 것은 채운다.(不足者 補之)"




자연(自然)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道'는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無爲)..

항상 만물을  '조화(造化)와 균형(均衡)과 형평(衡平)의 상태'로 이끌어간다.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


파도가 출렁거리는 것은 균형(均衡)을 유지하기 위한 몸짓이다.



지구의 기상이변으로 일어나는 지진, 홍수, 가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도

인간에 의해서 깨어진 자연의 균형(均衡)을 되찾기 위한

지구의 몸부림이며, 자정(自淨)작용이다.






    



※Tip!- '인지도 즉불연 손부족이봉유여 人之道 則不然 損不足而奉有餘 '




"하늘의 道는 남은 것을 덜어(天之道 損有餘)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데,(而補不足)

사람의 道는 그렇지 않아서(人之道 則不然)

(오히려)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편에 갖다 바친다.(損不足而奉有餘)"




하늘의 덜어내고 보태주는 '손익(損益)의 道'는..

사사로움이 없는 자연의 원리에 따른 '형평(衡平)의 道'다.



그런데 이 '형평(衡平)의 道'는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운영 원리로도 아주 중요한 것이다.



자연의 道는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無私).. 고르다.(均)

그러나 사람에게는 사사로움이 많아서(有私).. 고르지 않다.(不均)"




사람의 손익(損益)의 道는 고르지 않아서(不均)..


오히려 부족한 백성에게서 끊임없이 덜어내어

여유있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힘있는 사람들, 위정자들에게 계속 갖다 바친다.

계속해서 그들을 떠받들게 한다.(損不足而奉有餘)



이렇게 여유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계속 거두어 들여

 사사롭게 그 부(富)를 축적해 가니,

인간세상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은 날로 더욱 심화되어 간다.









사람이 지나치게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해

자연의 원리에 따른 이 '형평의 道'를 지나치게 거스르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간 세상의 조화(造化)와 균형(均衡)과 형평(衡平)이

깨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깨어진 '형평(衡平)의 道'를 다시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세상의 '쓰나미 현상'이 바로 '시민혁명(市民革命)'이다.

그것은 사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였던 孔子도.. "모자라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不患寡而患不均)"고 말했던 것이다.





    




"누가 능히 남는 것으로(孰能有餘)

천하를 받들 것인가?(以奉天下)

오직 道와 하나된 사람만이 그럴 수 있다.(唯有道者)"

  



그러므로 과연 누가 있어서..

여유있는 사람들의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태어주는 '형평(衡平)의 道'로써..(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그런 '형평(衡平)의 정치'로써.. 천하를 경영할 것인가? 




한 때 공산주의가 그런 '형평(衡平)의 정치(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를 하겠다고 나섰으나,

결국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왜, 어째서, 그들은 실패한 것일까?



역사는.. 그런 '형평(衡平)의 정치(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를 하겠다던 공산주의자들도 역시

대체로 사사로움, 사욕(私慾)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有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런 '형평(衡平)의 정치(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를 '억지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有爲)' ..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형평(衡平)의 정치'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사로움을 갖고(私慾) '억지로 하려고 했다(有爲)'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억지가 작용한다면(有爲)'.. 그것은 道가 아니다.

道가 아니면 일찍 끝난다. 실패하기 마련이다. (不道早已)











(그런데) 하늘의 道는, 자연의 道는 절대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無爲)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無私)..

그래서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無爲)




자연의 道는 일부러(억지로, 有爲) 높은 것을 누르고

일부러(억지로, 有爲) 낮은 것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道는 '하지 않는 것(不爲)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無爲)'



자연의 道는.. '적절한 때(천시, 天時)'에..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무위(無爲)한 '형평(衡平)의 道'인 것이다.




'오직 그런 자연의 道와 하나된 사람만이...(唯有道者)

그런 정치 감각이 깨어있는 사람만이...(唯有道者)

 '형평(衡平)의 정치'를 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