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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공개)/도덕경(道德經)

노자이야기- 64장. 편안한 것은 유지하기 쉽고,(其安 易持)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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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이야기- 64장. 편안한 것은 유지하기 쉽고,(其安 易持)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其安 易持 其未兆 易謀 其脆 易泮 其微 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 敗之 執者 失之 是以 聖人 無爲 故 無敗

無執 故 無失 民之從事 常於機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 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기안 이지 기미조 이모 기취 이판 기미 이산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누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위자 패지 집자 실지 시이 성인 무위 고 무패

무집 고 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시이 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편안한 것은 유지하기 쉽고,(其安 易持)

조짐이 드러나기 전에는 꾀하기가 쉽다.(其未兆 易謀)

연한 것은 나누기 쉽고,(其脆 易泮)

미미한 것은 흩어버리기 쉽다.(其微 易散)

(그러므로 일이) 생겨나기 전에 하고,(爲之於未有)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린다.(治之於未亂)

 

아름드리 나무는 터럭 끝만한 싹에서 나고,(合抱之木 生於毫末)

9층의 누대는 흙 한 삽을 쌓는데서 올라가고,(九層之臺 起於累土)

천릿길은 발 아래서 시작한다.(千里之行 始於足下)

 

(有爲로) 하려는 사람은 실패하고,(爲者 敗之)

집착하는 사람은 잃는다.(執者 失之)

 

그래서 聖人은 (是以 聖人)

무위(無爲)하기 때문에 실패가 없다.(無爲 故 無敗)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無執 故 無失)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항상 거의 이루어질 단계에서 실패한다.

(民之從事 常於機成而敗之)

처음처럼 끝까지 신중하다면(愼終如始)

일에 실패가 없다.(則無敗事)

 

그래서 聖人은(是以 聖人)

욕심내지 않음을 욕심내고,(欲不欲)

얻기 힘든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不貴難得之貨)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學不學)

사람들의 지나친 바를 회복시키며(復衆人之所過)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돕는다.(以輔萬物之自然)

감히 (有爲로) 하지 않는다.(而不敢爲)

 

 

 

 


   


 

※Tip!-‘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편안한 것은 유지하기 쉽고,(其安 易持)

조짐이 드러나기 전에는 꾀하기가 쉽다.(其未兆 易謀)”

 

 

 

어떤 상황이나 일을 대하는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면(其安)

그 상황이나 일은 유지해 나가기가 쉽다.(易持)

 

그러므로 항상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여기서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이란

‘무사(無私)’, ‘무욕(無慾)’, ‘무심(無心)’의 마음을 말한다.

 

 

 

또한, 어떤 상황이나 일이 이미 나타나면..새로운 일을 도모하기가 어렵지만,

아직 일이 생겨나기 전에는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가 쉽다.(其未兆 易謀)

    

 

그러므로 聖人은 항상 일의 기미를 알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도모하니(其未兆 易謀),

그렇게 기미를 아는 것이 ‘신령스러움(神)’이다.

 

 

여기서‘조(兆)’는 조짐, 기미, 움직임의 미미함이니,

‘모든 상황과 일이 겉으로 들어나기 전의 조짐’을 말한다.

 

 

 

그래서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의 기미를 알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도모할 만큼(其未兆 易謀)..

道의 이치에 따라 항상‘지극한 정성’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이) 생겨나기 전에 하고,(爲之於未有)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린다.(治之於未亂)”고 말하는 것이다.

 

 





 

  

  

※Tip!-‘시이성인 무위고무패 是以聖人 無爲故無敗’와

‘무집고무실 無執故無失’

 

 

 

어떤 일이든 그 시작은 작고 미미하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그 시작은)

터럭 끝 같은 작은 싹에서 커 가는 것이다.(合抱之木 生於毫末)

 

9층이나 되는 높은 집도 (그 시작은)

흙 한 삽을 놓는 것에서 올라간다.(九層之臺 起於累土)

천리를 가는 먼 여행도 (그 시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서 시작된다.(千里之行 始於足下)”

 

 

그러므로 일을 시작할 때는 너무 의욕과 욕심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작고 미미한 데서 시작하여 마침내 커지는 이치,

낮은 데서 시작하여 높아지는 이치,

가까운 데서 출발하여 멀리까지 나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聖人은 항상 ‘道의 이치에 따라’ 일하며,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無爲 故 無敗)

 

욕심을 내어 일을 성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목적을 이룬다.(無執 故 無失)

 

    

 

그러므로 “聖人은 (是以 聖人)

무위(無爲)하기 때문에 실패가 없고,(無爲 故 無敗)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無執 故 無失)“고 말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하는 일은(民之從事)

항상 거의 이루어질 단계에서 실패하는데,(常於機成而敗之)

 

만약 처음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신중하다면(愼終如始)..

 

즉,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일을 마치는 순간까지 항상 삼가고 조심하여 행한다면(愼終如始)..

실패하는 일이 없다.(則無敗事)”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처음 시작할 때의 ‘무욕(無慾)’,‘무심(無心)’의 상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 일의 성사(成事)를 내다보면서 그만 욕심이 생기고 만다.

그래서 욕심을 내어 억지로 일을 이루려고 하게 되니,

 마침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Tip!-‘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是以聖人 欲不欲 不貴難得之貨’

 

 

 

그래서“聖人은(是以 聖人)

욕심내지 않음을 욕심내고,(欲不欲)

얻기 힘든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不貴難得之貨)”

 

 

 

보통 사람들은 얻기 어려운 재화를 얻기 위해

평생을 매달리지만,

聖人은 그러한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순박한 道’를 추구하니..

 

 

 

“聖人이라고 해서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聖人非無欲也)

욕심을 내면서 욕심을 내지 않는다.(欲而不欲)..

사람들이 욕심내는 것을 욕심내지 않으며,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는 것을 욕심낸다. (欲不欲)”

(『노자익(老子翼)』에서)

 

 

 

聖人은 순박한 道,‘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욕심낸다.

오직‘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추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聖人이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니다.(聖人非無學야)

배우면서 배우지 않는다.(學而不學)

사람들이 배우는 것을 배우지 않으며,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운다.(學不學)”

(『노자익(老子翼)』에서)

 

 

 

보통 사람들은 성공과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세상적인 지혜와 방법’을 열심히 배우지만,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聖人은 세상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배우니...

 

 

그렇게 자연의 道를 체득한 聖人은..

 

 

보통 사람들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짓게 되는..

지나친 허물들을 (道에 돌아가) 회복하게 하고(復衆人之所過)..

 

 

만물의 ‘스스로 그러한 원리(自然)’에 힘을 보태어(以輔萬物之自然)

잘 되게 할 뿐,

감히 욕심을 내세워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而不敢爲)

 

  

  

그러므로 “(聖人은)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學不學)

사람들의 지나친 바를 회복시키며(復衆人之所過)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돕는다.(以輔萬物之自然)

감히 (有爲로) 하지 않는다(而不敢爲)”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