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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4-2.인간세(人間世):만약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못난 사람을 싫어하는 임금이라면(且苟爲悅賢而惡不肖)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11. 1.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4-2.인간세(人間世)

:만약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못난 사람을 싫어하는 임금이라면(且苟爲悅賢而惡不肖)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인간세(人間世)'란?


'인간세(人間世)'는 '인간이 사는 세상'이니,

'속된 세상, 속세(俗世)'를 말한다.


장자(莊子)는 인간의 '사회적 삶(人間世)'을 부정하지 않았다.


세상 안에서 어울려 살거나

혹은 세상 밖에서 은자(隱者)가 되어 숨어 살거나 간에

사람은 혼자만으로는 사람답게 살 수 없다.


험한 인간세(人間世)를 살아 가면서

어떻게 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장자(莊子)는 말한다.

항상 '자연의 道(無爲自然의 道)'에 순응하며,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때 하늘(天, 道, 自然)은

내 몸을 빌어 '공적(功)'을 이루리니(功完),

道의 큰 쓰임새인

'무용이대용(無用而大用)'을 비로소 성취하게 된다.  




(공자仲尼가 계속 말하기를...)

"또한, 위(衛)나라 임금이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미워한다면(且苟爲悅賢而惡不肖)

무엇 때문에 너를 써서 특이한 정치를 하려고 하겠느냐?(惡用而求有以異)

너는 아무 것도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若唯無詔)

왕과 대신들은 남을 누르고 논쟁에서 반드시 이기려고 하는 자들이다.(王公必將乘人而鬪其捷)

그러면 너는 지지않기 위해서

두 눈은 부릅떠지고(而目將熒之)

안색은 굳어지고(而色將平之)

온갖 말을 늘어놓고(口將營之)

온갖 자세를 취하며(容將形之)

네 마음도 정치꾼의 마음이 될 것이다.(心且成之)

이것은 불로 불을 끄고(是以火求火)

물로 물을 막으려는 것과 같다.(以水求水)

이것을 두고 '싸움꾼이 더 많아진다(益多)'고 한다.(名之曰益多)

네가 바로잡겠다는 첫 마음을 따르다보면 끝없는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順始無窮)

아마도 너는 신임을 받지 못한 채 말을 많이 하여(若殆以不信厚言)

반드시 포악한 임금 앞에서 죽게 될 것이다.(必死於暴人之前矣)



또한, 옛날에 걸(桀)왕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且昔者 桀殺關龍逢)

주(紂)왕는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다.(紂殺王子比干)

이들은 모두 자기 몸을 닦고(是皆修其身)

아랫사람의 신분으로 남의 백성을 보살펴 어루만졌다.(以下傴拊人之民)

이것은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성정을 거스른 것이다.(以下拂其上者也)

그래서 그 임금들은 이들의 수행이 훌륭한 것을 빌미로 삼아

이들을 죽인 것이니(故其君因其修以擠之)

이것은 명예(名, 명성)를 좋아했기 때문이다.(是好名者也)

옛날에 요(堯)임금은 총(叢)나라와 지(枝)나라와 서오(胥傲)족을 공격했고(昔者 堯攻叢枝胥傲)

우(禹)임금은 유호씨(有扈)를 공격했다.(禹功有扈)

그러다가 그 나라는 폐허가 되고(國爲虛厲)

임금은 죽음을 당했으니(身爲刑戮) 

이것은 전쟁을 그치지 않고(其用不止)

실리(實, 이익)를 끝없이 탐냈기 때문이다.(其求實無已)

이들은 모두 명예(名, 명성)와 실리(實, 이익)을 추구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이다.(是皆求名實者也)

어찌 너만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而獨不聞之乎)

명예(名)와 실리(實)에 대한 욕심은

성인(聖人)도 이길 수 없는 것인데(名實者 聖人之所不能勝也)

하물며 네가 어찌 하겠느냐?(而況若乎)

하지만 네게도 반드시 무슨 방법이 있을 테니(雖然 若必有以也)

어디 내게 말해 보아라!"(嘗以語我來)




※ 만약 위(衛)나라 임금이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알아보고 등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그 나라에 있는 어진 인재를 써서 좋은 정치를 폈을 것이다.

굳이 안회(顔回)까지 등용하는 별난 짓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衛)나라 임금은 그런 인물이 못 된다.

그런 임금 밑에서 권력자들이 한통속이 되어 공격해온다면,

안회(顔回), 너는 이를 방어하고 맞서 싸우다가 

그들과 똑같은 정치꾼, 모사꾼, 싸움꾼이 될 것이다.

 정치개혁은 커녕 어리석은 군주에게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 위나라 (衛) 임금이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싫어한다면 더욱 심각해진다.

옛날 걸(桀)왕과 주(紂)왕은 어진 사람을 보면 자신의 어질지 못하고 못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진 사람을 미워했다.

그래서 꼬투리를 잡아 관용봉(關龍逢)과 비간(比干)을 죽여버린 것이다.



세상은.. 특히, 유가(儒家)는..

 걸(桀)왕과 주(紂)왕을 폭군으로 기록하고

관용봉(關龍逢)과 비간(比干)을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장자(莊子)는 오히려 관용봉(關龍逢)과 비간(比干)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충신(忠臣)'이라는 명예(名)를 좋아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도가(道家)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양생(養生)의 道'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것은 참된 道가 아니다.




※ 여기서 '걸(桀)'왕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이다.

술로 연못을 채우고 그 위에 배를 띄우고(酒池)

연못 주위의 나무에 고기를 매달아 놓고(肉林)

벌거벗은 무희들의 음란한 춤을 구경했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인공이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는데

충신 관용봉(關龍逢)이 간언(諫言)을 하자 머리를 베어 죽였다. 

결국  걸(桀)은 상(商,殷)나라의 탕(湯)임금에게 멸망당했다.



(紂)왕은 은(殷, 商)나라의 마지막 임금이다.

그는 구리 기둥을 만들어 기름을 바르고 거기에 죄인을 묶어놓고는

밑에서 장작불을 때 태워 죽였다. 

사람의 살 타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은

잔혹한 형벌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폭정을 숙부인 왕자 비간(比干)이 말리자,

(紂)는 "내가 듣기로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가 있다고 합니다.

숙부는 세상 사람이 모두 성인이라 칭송하니,

정말 그런가 구경이나 해봅시다'하며,

비간(比干)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게 했다.

결국 (紂)는 주(周)나라의 무(武)왕에게 멸망당했다.




※ 장자(莊子)는..  더 나아가 태평성대를 이룩한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요(堯)임금과 우(禹)임금까지도.. 끝없이 명예(名)와 실리(實)를 추구하여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수없이 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며

마침내 자기 자신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라고 가차없이 비판한다.



즉, 그들은 모두 '외물(外物)', 외부세계에 마음을 빼앗겨

자연(自然)의 道에 어긋나는 지나친 행위를 한 사람들이다.



도가(道家)의 입장에서 보면..

명예(名)든 실리(實)든 '삶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것은 중정(中正)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양생(養生)의 道가 아니다.




※ 요(堯)임금과 우(禹)임금에 대한 장자(莊子)의 비판은 과연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일까?

 

요(堯)임금은 한(漢)나라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사기(史記)』를 집필 이후에 

중국 쪽에서 고대(古代)의 태평성대인 '요순(堯舜)시대' 를 연 성군(聖君)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단군조선(檀君朝鮮)쪽의 전승(傳承)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다음은 단군조선(檀君朝鮮)쪽의 전승(傳承)이다.



'요(堯)'는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는데..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순행(巡行)을 떠나 부도(符都)를 비운 사이에

서남의 종족인 묘예(苗裔)족을 공격하여 그 땅을 빼앗고 나라(唐都)를 세웠다고 한다.


(堯)는 '이내제외(以內制外, 內로써 外를 제어하는 이치)'라는

'제왕의 道'를 주창했기 때문에

장자(莊子)에서도 등장하는 도가(道家)의 은자(隱者)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이것을 심히 꾸짖고 거절했다고 한다.



요(堯)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관경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끝없이 전쟁을 했으며, 말년에는 세력을 잃고

순(舜)에게 양위했으며 감금된 상태에서 죽었다고 한다.




※ 그렇다면 '순(舜)'은 누구인가?

순(舜)은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신하(使者,외교가)인 '유호씨(有扈, 有戶氏)'의 장남이다.

유호씨(有扈, 有戶氏)가 바로 중국 측에서 말하는 '고수(瞽叟)'다.


단군조선(檀君朝鮮) 쪽의 전승과 중국 쪽의 전승에서 나타나는

유호씨(有扈, 有戶氏)와 순(舜)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러나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입장에서 볼 때...

요(堯)는 부도(都)를 배반한 반역자이며,

'천부(天符)의 법'에 어긋나는 '제왕의 道'를 주창한 변란자일 뿐이다.


따라서 유호씨(有扈, 有戶氏)는 요(堯)에게 선양을 받은..

즉 당도(唐都, 요)의 제위를 물려받은 아들 순(舜)을 용서하지 않았다.



훗날 순(舜)은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순행하던 중에 시해(弑害)를 당했는데,

그 시해한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었다.



 우(禹)(鯀)의 아들이다.

오래 전 순(舜)은 9년 홍수의 책임을 물어 당시의 치수(治水)책임자였던 곤(鯀)을 사형시켰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우(禹)에게 치수의 책임을 맡겼는데,

(禹)의 무리들이 오랜 원한을 품고 순(舜)을 시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舜)이 자, 요(堯)의 두 딸이며(舜)의 두 아내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깊은 원한을 품고 소상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舜)의 아들인 상균(商均)은 고국인 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하였다.




우(禹)임금은 유호씨(有扈, 有戶氏)를 여러 번 공격했으나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혹은 회계산)의 진지에서 죽었다. 



결국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이 모두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관경을 공격했고 

끝없이 전쟁을 했으며..

그 결과..

장자(莊子)의 말대로.. 그 나라는 폐허가 되고(國爲虛厲)

임금은 죽음을 당했다.(身爲刑戮) 



여기서 '허(虛)'는 그 고장에 사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려(厲)'는 죽어서 후손이 끊기는 것이니, '허려(虛厲)'는 '폐허'가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형륙(刑戮)'은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莊子)의 글은 오히려 단군조선(檀君朝鮮) 쪽의 전승에 더 가깝다.



 『장자(莊子, B.C.290년)』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B.B.109년-B.C.91년) 』보다

약 200년 정도 먼저 나온 책이니,

아마도 장자(莊子)의 글이 본래의 고대(古代)의 전승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게다가 장자(莊子)는 사마천(司馬遷)처럼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유가(儒家)적 의미의 '수양(修養)'과

도가(道家)철학이 말하는 '양생(養生)'의 차이점을 알 수가 있다.


유가(儒家)에서는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즉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실제로 공자(孔子)는 위(衛)나라에 가면..

 "반드시 명분(大義名分)부터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위(衛)나라 임금부터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자(莊子)는 왜.. 굳이 공자(孔子)의 입을 빌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장자(莊子)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끝없이 명예(名)와 실리(實)를 탐내는 그 마음, 그 욕망을 경계하고 있다.



장자(莊子)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심재(心齋)'다.

이 이야기의 끝에 '심재(心齋)'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