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2-1.제물론(齊物論)
:남곽(南郭)의 자기(子綦)는 안석(隱机)에 기대 앉아(南郭子綦 隱机而坐)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제물론(齊物論)이란?
'제물(齊物)'은 장자(莊子)가 천지만물(天地萬物)을 바라보는 시선이니,
'만물을 가지런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이것은 차별없는 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만 드러나는 '만물의 참 모습(齊物)'이다.
오직 무심(無心)과 무아(無我)의 경지에 설 때..
천지만물과 내가 가지런히 평등함을 알며,
생사(生死)를 초월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어지러운 시비(是非)들을 '본래의 밝음(明, 天)'에 비춰서 보며,
자연(自然, 道)에 맡긴다.
그럴 때에 천지만물과 모든 시비가 절로 조화롭게, 가지런하게 '하나(一, 道)'가 된다.
그것이 '제물(齊物)'이다.
남곽(南郭)의 자기(子綦)는 안석(隱机)에 기대 앉아 (南郭子綦 隱机而坐)
하늘을 우러러 길게 숨을 내쉬었다.(仰天而噓)
그 모습이 멍하니 마치 몸을 잊은 듯 했다.(㗳焉似喪其耦)
제자인 안성(顔成)의 자유(子游)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물었다.(顔成子游 立侍乎前 曰)
"어쩐 일이십니까?(何居乎)
몸은 참으로 마른 나무처럼 될 수 있고(形固可使如槁木)
마음은 참으로 불 꺼진 재처럼 될 수 있습니까?(而沈固可使如死灰乎)
지금 안석에 기대어 계신 분은 (今之隱机者)
전에 안석에 기대어 계셨던 분이 아닙니다.(非昔之隱机者也)"
자기(子綦)가 말했다.
"언아, 훌륭하구나! 그런 질문을 하다니.(偃 不亦善乎 而問之也)
방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今者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
아마 너는 사람의 음악(人籟)은 들었지만 땅의 음악(地籟)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汝聞人籟 而未聞地籟)
비록 땅의 음악(地籟)을 들었다 해도 하늘의 음악(天籟)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汝聞地籟 而未聞天籟夫)"
자유(子游)가 물었다.
"감히 그 도리를 여쭙고자 합니다.(敢問其方)"
자기(子綦)가 대답했다.
"대지(大塊)가 기(氣)를 내뿜는 것을 바람(風)이라고 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바람이 일지 않으면 몰라도(是唯無作)
한번 일기 시작하면 땅 위의 모든 구멍(萬竅)이 성난 듯 울부짖는다.(作則萬竅怒)
너만이 저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而獨不聞之翏翏乎)
산과 숲의 높은 봉우리와 (山林之畏隹)
백 아름드리 되는 큰 나무 구멍들이(大木百圍之竅穴)
마치 콧구멍 같고, 입구멍 같고, 귓구멍 같고,
목 긴 술병 같고, 술잔 같고, 절구통 같고,
연못 같고, 웅덩이 같은데,
거기서 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 화살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헉헉 들여마시는 소리, 외치는 소리, 흐느끼며 곡하는 소리,
동굴에서 둔하게 울리는 소리, 새처럼 지저귀는 소리를 낸다.
앞에서 우우하고 부르면 뒤에서 워워하고 대답한다.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회오리 바람이 불면 거칠게 대답한다.
그러다가 사나운 바람이 자면 모든 구멍이 텅 비어 고요해진다.(厲風濟 則衆竅爲虛)
그런데 너만이(而獨)
바람이 지나간 뒤 나뭇가지들이 흔들흔들 살랑살랑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느냐?
(不見之調調之刁刁乎)"
자유(子游)가 말했다.
"땅의 음악은 온갖 구멍(衆竅)에서 나오는 소리요,(地籟則衆竅是已)
사람의 음악은 피리(比竹)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겠습니다.(人籟則比竹是已)
이제 감히 하늘의 음악에 대해 여쭙습니다.(敢問天籟)"
자기(子綦)가 대답했다.
"불어대는 소리는 만 가지로 서로 같지 않으니 (夫吹萬不同)
각자 자신의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다.(而使其自己也)
모두가 스스로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咸其自取)
그 구멍들이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자, 그는 누구일까?(怒者畿誰邪)"
※ 남곽(南郭)의 자기(子綦)는..
주로 천민과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성곽(郭)의 남쪽 지역(南郭)에 사는 인물로..
여기서 '道를 아는 스승'이다.
그의 제자인 안성(顔成)의 자유(子游)는..
성 안에서 사는(安城) 귀족의 신분이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의 신분관계가 당시의 사회계급적 신분관계를 뛰어넘는 것은..
『장자(莊子)』의 여러 장면에서 나오는데,
때로는 백정이나 난장이, 신체불구자, 괴물이 '스승'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 남곽(南郭)의 자기(子綦)가 안석(책상)에 기대 있는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그는 지금 좌망(坐忘)에 들어 있는 것이다.
제자인 안성(顔成)의 자유(子游)가 보기에..
자기 스승의 모습이 마치 몸은 마른 나무(槁木) 같고,
마음은 식은 재(死灰) 같아 보였다.(止感)
멍하니 앉아 호흡(調息)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마음이 몸을 잊은 듯 했다.(㗳焉似喪其耦)
스승은 지금 좌망(坐忘)에 들어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燭)의 상태에 있었지만,
제자는 거기서 어떤 생명의 기운이나 생기어린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
여기서 '마른 나무(槁木)와 죽은 재(死灰)'는..
도가(道家)에서 '정적무심(靜寂無心)'한 상태를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 스승의 그런 모습에 놀라서 묻는 자유(子游)에게
자기(子綦)는 차분하게 말한다.
"방금 나는 나를 잃었다. 나를 여의었다.(今者吾喪我)"
여기서 앞의 '나(吾)'는 완전한 앎, 깨달음, 혹은 메타인지자로서의 '나'다.
뒤의 '나(我)'는 생각, 감정과 욕망을 가진 그때 그때마다 변하는 존재로서의 '나'다.
이것은 말로 억지로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며.. 그냥 아! 하고 알아들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스승은 '무심(無心)한 상태'에 든 것이다.
여기서 '무심(無心)하다'는 것은 돌멩이, 돌부처의 무심함이 아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무심함, 무감각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깨어나서 활짝 열려있는 상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보고 듣고 느끼지만..
그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다.
바로 완전하게 깨어있는 상태..
즉 '완전한 지감(止感)의 상태'를 말한다.
그런 좌망(坐忘)의 상태, 지감(止感)의 상태,
내가 나를 여읜 상태(吾喪我)에서만..
장자(莊子)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하늘의 음악, 하늘의 소리(天籟)'를 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장자(莊子)는 '멍하니 몸을 잊었다(㗳焉似喪其耦)',
'내가 나를 여의었다(吾喪我)'고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다.
※ 자기(子綦)는 자유(子游)에게 땅의 음악, 하늘의 음악에 대해서 말해준다.
"언(偃,자유의 이름)아, 너는 땅의 음악과 하늘의 음악을 들어보았느냐?"
대지가 숨을 내뿜으면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바람이 불면 땅에 있는 온갖 구멍이 성난 듯이 울어댄다. 소리를 낸다.(作則萬竅怒)
그게 바로 '땅의 음악, 땅의 소리(地籟)'다.
이어지는 장자(莊子)의 땅의 노래, 바람의 노래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압권이다.
땅에는 온갖 구멍이 있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그 수많은 구멍들의 모양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불어대는 바람소리는 만 가지로 서로 같지 않으니 (夫吹萬不同)
각자 자신의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다.(而使其自己也)"
그런데 여기서 스승은 제자에게 묻는다.
각각의 구멍이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그 구멍들로 하여금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자, 그는 누구냐'고 묻는다.
"모두가 스스로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咸其自取)
그 구멍들이 성난 소리를 내게 하는 자, 그는 누구일까?(怒者畿誰邪)"
※ 스승 자기(子綦)의 질문 안에 이미 답이 있다.
'땅의 음악(地籟)'은 들리는데, 그 음악의 주인(怒者)은 보이지 않는다.
'땅의 음악(地籟)'의 주인은 바람인가? 구멍인가?
아니면 그것을 듣고 있는 자기(子綦)와 자유(子游)인가?
바람이 저 혼자 불 수가 없고, 구멍이 저 혼자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소리의 참 주인(眞宰)은 누구인가?
'사람의 음악(人籟)'은 피리(比竹)에서 나오는 것이니,
피리(比竹)는 사람이 대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이다.
그것은 '인위(人爲)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음악(人籟)'의 주인은 사람인가? 피리인가?
사람이 저 혼자 불 수가 없고, 피리가 저 혼자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소리의 참 주인(眞宰)'은 누구인가?
※ 사람의 음악, 땅의 음악, 그 각자의 소리를 내게 하는..
'소리의 참 주인(眞宰)'은.. 소리의 근원(根, 本)은..
그 스스로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늘의 음악(天籟)'은 '하늘(天)'을 악기로 표현한 것이니,
하늘(天)은 가장 큰 것(大)이고,
하늘의 소리(天籟)는 '가장 큰 소리(大音)'다.
"가장 큰 소리(大音)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大音希聲)"
(『노자』 41장에서)
'하늘의 음악(天籟)'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율려(律呂)는..
모든 소리, 모든 음악의 참 주인이며, 참 주재자(眞宰)이다.
그것은 바로 道다.
그것이 바로 자연(自然)이다.
'하늘의 음악(天籟, 大音, 律呂 )'이 그렇게 한번 울면 천지만물이 생기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긴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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