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꽃
노자이야기- 52장.천하에 처음(始)이 있어서(天下有始)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謂習常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둑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부수기모 몰신불태 색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천하에 처음(始)이 있어서(天下有始)
천하의 어머니가 되었다.(以爲天下母)
그 어머니를 터득하면 그 자식들을 알고,(旣得其母 以知其子)
그 자식들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키면,(旣知其子 復守其母)
평생토록 위태롭지 않다.(沒身不殆)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塞其兌 閉其門)
평생동안 고단하지 않다.(終身不勤)
그 구멍을 열고 일을 하면(開其兌 濟其事)
평생동안 구원받지 못한다.(終身不救)
작은 것(小,미미함)을 보는 것을‘밝다(明, 깨달음)’고 한다.(見小曰明)
부드러움(柔)을 지키는 것을‘강하다(强)’고 한다.(守柔曰强)
그 빛을 쓰고 그 밝음으로 돌아가면(用其光 復歸其明)
몸에 재앙이 미치는 일이 없다.(無遺身殃)
이것을‘습상(習常)’이라고 말한다.(是謂習常)"
※Tip!-‘천하유시 이위천하모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시(始)’는 처음, 시작, ‘천하가 있기 전’이니,
바로 근원인‘道’를 말한다.
‘자(子)’는 어머니인 道에서 생겨난‘천지와 만물(萬物)’을 말한다.
‘몰신(沒身)’은 평생동안, 죽을 때까지,‘종신(終身)’과 같은 뜻이다.
“천하에 처음(始)이 있어서(天下有始)
천하의 어머니가 되었다.(以爲天下母)”
세상에 시초(始)가 있어서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천지와 만물을 낳는 근원(根), 시작(始), 어머니(母)는 바로‘道’다.
道는 세상만물의 근원이며,
‘낳고(生) 기르는(畜) 여성성(天下母, 玄牝, 谷)'을 갖고 있다.
천지와 만물은‘道의 자식(子)’이다.
“어머니인 道를 터득하면(旣得其母)
그 자식들인 천지와 만물을 알게 된다.(以知其子)
천지와 만물(子)을 알고(旣知其子)
다시 어머니인 道를 지키면,(復守其母)
평생토록 위태롭지 않다.(沒身不殆)”는 것이다.
※Tip!-‘색기태 폐기문 塞其兌 閉其門’와
‘개기태 제기사 開其兌 濟其事’
‘태(兌)’는 구멍이며, 사람의 몸에서
바깥 세계의 물리적 자극을 인지하고 호흡하는 구멍들(감각기관)을 말한다.
예를 들어‘칠규(七竅)’는 일곱 구멍이며,
두 눈(眼), 두 귀(耳), 두 콧구멍(鼻), 입(口) 하나다.
여기서‘태(兌)'가 사람의‘욕망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멍’이듯이,
‘문(門)’역시 사람의‘욕망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된다.
또한 이‘구멍(兌)’과 ‘문(門)’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육근(六根)’으로도 볼 수 있다.
‘육근(六根)’이란, 사람의 몸에 있는 '여섯 가지 말초감각기관'으로,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이다..
또한‘육경(六境, 六界)’은 그‘감각의 대상’이 되니,
모양(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진리(法) 등, '여섯 가지 경계'를 말한다.
이렇게‘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서
모든 생각과 감정과 욕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十二處)
따라서‘육근(六根)’을 열어놓으면..
즉, '구멍(兌)’과 ‘문(門)’을 열어 놓으면(開其兌)..
바깥 세계의 감각적 대상인‘육경(六境)’에 끄달려
그 삶이 고단해진다.(終身不救)
우리의 마음이 잠시도 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욕망의) 구멍을 막고(塞其兌)
그 (욕망의) 문을 닫아야만 (閉其門)..
(우리의 마음이 비로소 쉬게 되어)
평생토록 고단하지 않게 된다.(終身不勤)”
만약,“그 (욕망의) 구멍을 열고(開其兌)
일을 만들어 보태면(濟其事)”
즉, 사람의 말초감각기관(兌, 門)에 '더 자극적이고 더 감각적인 것들'을 찾아서..
더 자극적인 모습(色), 더 자극적인 소리(聲), 더 자극적인 맛(味), 더 자극적인 냄새(香),
더 자극적인 촉감(觸), 더 자극적인 주의나 주장(法)을 찾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끌려다니다 보면..
또는 그 문(兌, 門)을 열어 '부귀공명의 세계'로 내달리다 보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구원받지 못한다.(終身不救)”
종신토록, 몸이 다할 때까지
감각에 끄달리고 욕망에 허덕이는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세상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정작 그 몸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 구제불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님이나 벙어리, 돌부처나 목석(木石)으로 살아야만 하는걸까?
그런 삶이 과연 온전한 삶, 구원된 삶, 완성된 삶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로부터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인간,
즉 '풍류(風流)를 아는 인간’을
‘신선(神仙)’ 또는 ‘진인(眞人)’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바로 '완성된 인간(弘益人間)'의 모습이다.
옛 '신선도(神仙圖)'를 살펴보면,
신선들은 항상 생황이나 피리 같은 악기,
꽃과 과일, 술통, 소나무와 바위, 검(劒),
사슴, 학, 호랑이 같은 야생의 동물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으로 나온다.
아무튼 신선(神仙)들은 '잘 논다.(逍遙遊, Play Well)'
마치 어린아이처럼 잘 논다.
그들은 전혀 목석(木石)이 아니며, 완고한 금욕주의자는 더욱 더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풍류(風流)’에서‘풍(風)은‘기(氣)’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옛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기(氣)'를
곧잘‘바람(風)’의 모습으로 표현하곤 했다.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내려오는 모습은(飛天舞)
원래‘기(氣)를 타고 노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다.(昇遊之氣)
그렇게‘풍류(風流)’라는 말에는
‘운기(運氣, 기를 운용함)’와 '축기(畜氣, 기를 축적함)’의 뜻이 함께 있으며,
바로‘기(氣)를 타고 논다' 는 의미다.(昇遊之氣)
그러니까, 남녀가 어울려 술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풍류가 아니다.
그것은 원래의 의미가 아주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기(氣)를 운용하여 쓰는 것’, '기(氣)를 타고 노는 것'이 바로
'풍류(風流)’또는 '풍류도(風流道)'의 본래 참 의미인 것이다.
이제, 수행적 차원에서, 그렇게 기(氣)를 타고 잘 노는 신선(神仙)들이..
‘몸에 있는 구멍을 막고(塞其兌) 문을 닫으면(閉其門)’,
어떻게 되는걸까?
그럴 때 신선(神仙)들은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드는 것이다.
이것이 도가(道家) 또는 신선가(神仙家, 풍류도)에서 말하는
'3대 수행법' 중의 하나인‘금촉법(禁觸法)’이다.
‘금촉(禁觸)’은 ‘부딪힘을 금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감각기관(七竅, 六根)에 부딪혀 오는
바깥 세계의 물리적인 자극이나 정보를 차단하고(禁觸)..,
의식을 내면 깊숙한 곳에 둘 때,
의식이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되었을 때(三昧)..,
자신 안에 있는‘생명의 실체(一氣, 道)' 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에서..
웅녀(熊女) 황후가 ‘깨달음’을 얻고자,
즉, 참사람인‘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고자,
한웅천황에게서 쑥과 마늘을 받아 동굴로 들어가
100일 동안 수행했다는 이야기도..
바로‘금촉법’의 한 방법을 묘사한 것이다.
‘몸에 있는 구멍을 막고(塞其兌)
문을 닫는(閉其門)’수행법은 바로 금촉법(禁觸法)이다.
웅녀 할머니는 그렇게 금촉법(禁觸法)을 수행하여,
삼매(三昧)에 들었고,
자신 안에 있는‘생명의 실체인 道(一)’를 만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참사람, 홍익인간이 되었다.
그게 약 4349년 전, 우리들의 할머니인,
‘곰 여자(熊女)가 사람(弘益人間)이 된 이야기’의 참 뜻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Tip!-‘견소왈명 見小曰明’과 ‘수유왈강 守柔曰强’과
‘용기광 복귀기명 用其光 復歸其明’
‘금촉법(禁觸法)’을 수행하면..
즉,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구멍을 막고(塞其兌)’
그 ‘출입문을 닫으면(閉其門)’..
비로소 자기 몸 안에 있는 자연(自然)한‘道의 묘한 작용’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미묘한(小, 微) 천지기운의 작용’을 보는 것을..
자신 안에 있는‘생명의 실체(一, 道)’를 보는 것을..
‘작은 것을 본다(見小)’라고 하며,
“작은 것(小, 微)을 보는 것을
‘밝다, 깨달았다(明)’라고 한다.”(見小曰明)
또한 만물의 어머니인 道는 아주 미미하면서도(小)
부드러움(柔)을 지니고 있는데,
“이 부드러움(柔)을 지키면
‘강하다(强)’고 한다.”(守柔曰强)
“그 빛을 쓰고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가면(用其光 復歸其明)”
여기서‘기광(氣光)’은 만물의 어머니인 道에서 나오는 빛이다.
바로‘깨달음의 빛’이며, ‘본성의 빛’이다.
『천부경(天符經)』에서..
“본심본 태양앙명(本心本 太陽仰明)”은
'본래 마음이 근본이다.(本心本)
본래 마음(本心)은 태양처럼 밝고 밝아서(本太陽, 큰 밝음)
밝음을 우러러 따른다(仰明)'고 읽을 수 있다.
즉, '본래 마음'은 이미 '깨달은 마음'이다.(本心本太陽)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본성광명(本性光明)’이 된다.
이것이 '바로 천부경(天符經)의 빛'이다.
따라서‘그 빛을 쓴다(用其光)’는 것은..
'본성광명(本性光明)'의 빛을 쓴다.
'본성광명(本性光明)'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것이다.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간다(復歸其明)’는 것은..
'깨달음(明)'으로,
'본성광명(本性光明)'으로 돌아간다(復歸其明)는 것이다.
빛(光)에서 빛(明)으로..
道(一)에서 道(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이것을‘道에 든다(習常)’고 말한다.(是謂習常)”
‘습상(習常)’은 ‘자연스럽고 올바른 道(常)’에 들어간다.
‘道에 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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