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초
노자이야기- 38장. 높은 德을 지닌 사람은 德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上德不德)..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 而無以爲 下德爲之 而有以爲
上仁爲之 而無以爲 上義爲之 而有以爲 上禮爲之 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故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 大丈夫 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부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 이무이위 하덕위지 이유이위
상인위지 이무이위 상의위지 이유이위 상례위지 이막지응 즉양비이잉지
고 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예 부예자 충신지박 이난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시이 대장부 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고 거피취자
"높은 덕(上德)을 지닌 사람은 德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上德不德)
그래서 德이 있다.(是以有德)
낮은 덕(下德)을 지닌 사람은 德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下德不失德)
그래서 德이 없다.(是以無德)
높은 덕(上德)을 지닌 사람은 무위(無爲)로써 하기 때문에
자기 행위를 의식하지 않는다.(上德無爲 而無以爲)
낮은 덕을 지닌 사람(下德)은 유위(有爲)로써 하기 때문에
자기 행위를 의식하게 된다.(下德爲之 而有以爲)
높은 어짊(上仁)을 지닌 사람은 어진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 행위를 의식하지 않는다.(上仁爲之 而無以爲)
높은 의로움(上義)을 지닌 사람은 의로운 행위를 하면서
자기 행위를 의식한다.(上義爲之 而有以爲)
높은 예의(上禮)를 지키는 사람은 예(禮)에 맞는 행위를 하면서(上禮爲之)
상대방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팔뚝을 걷고 덤벼든다.(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그러므로 道를 잃은 뒤에야 사람들은 德을 말하고,(故 失道而後德)
德을 잃은 뒤에 어짊(仁)을 말하고,(失德而後仁)
어짊(仁)은 잃은 뒤에 의로움(義)을 말하고,(失仁而後義)
의로움(義)을 잃은 뒤에 예(禮)를 말한다.(失義而後禮)
대체로 예의(禮)라는 것은(夫禮者)
충실함(忠)과 믿음(信)이 얇아져 생겨난 것이니,(忠信之薄)
혼란의 시작(首, 머리)이다.(而亂之首)
일을 앞서 안다는 것(前識者, 똑똑한 사람)도
道의 겉치레(華, 꽃, 꾸밈, 말단)에 지나지 않으니,(前識者 道之華)
어리석음의 시작(始)이다.(而愚之始)
그러므로 대장부는 (道의) 두터운 모양으로 처신하며,(是以 大丈夫 處其厚)
얄팍한 모습으로 처신하지 않는다.(不居其薄)
착실하게(實)에 처신하고,(處其實)
겉치레(華, 꽃, 말단)를 하지 않는다.(不居其華)
그러므로 저것(말단,華 )을 버리고 이것(道, 實, 根, 근원)을 취한다. (故 去彼取此)
※Tip!-‘상덕부덕 시이유덕 上德不德 是以有德’와
‘상덕무위 이무이위 上德無爲 而無以爲’
높은 덕(上德)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 德이 있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德이 있게 된다.(上德不德 是以有德)
‘德’이란 '무위(無爲)로써 이루어지는 道의 작용’이다.
높은 덕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德을 베푼다는 의식이 없이,
마음에 우러나서 그냥 德을 베푼다.
그렇게 무위(無爲)로써 한 행위에 대해 그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이 德을 베푼 행위를 의식하지도 않는다.(上德無爲 而無以爲)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높은 덕(上德)을 지닌 사람은
얼핏 보기에 부덕(不德)한 사람, 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번쩍거리지도 않기 때문에
뭐 그렇게 좋은 일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Tip!-‘하덕부실덕 시이무덕 下德不失德 是以無德’와
‘하덕위지 이유이위 下德爲之 而有以爲’
덕이 낮은(下德) 사람은 자신이 베푼 德에 집착하여(執德)
그 德을 잃지 않으려고 하니(不失德),
그래서 德이 없다.(是以無德)
여기서 '잃다 실(失)'은 ' 잊다 망(忘)'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부실덕(不失德)’은 ‘부망덕(不忘德)’이 된다.
‘부망덕(不忘德)’이란 자신이 '德을 베풀었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했는데,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꽉 움켜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德에 집착하는 것이다'. (執德)
비록 겉으로 표현을 안 했어도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부망덕(不忘德)’이다.
그러므로 덕이 낮은(下德) 사람은 德을 베풀 때,(下德爲之)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德을 베푼다.(而有以爲)
※Tip!-‘상인위지 이무이위 上仁爲之 而無以爲’와 ‘상의위지 이유이위 上義爲之 而有以爲’와
‘상예위지 이막지응 즉양비이잉지上禮爲之 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높은 어짊(上仁)을 지닌 사람은 그냥 어질게 행동할 뿐,(上仁爲之)
자신의 행위가 '어질다, 또는 어질지 않다' 하는 의식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와 저절로 어질게 행동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높은 어짊(上仁)이란
그저 무위(無爲)로써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어짊을 베풀 뿐, (而無以爲)
그저 사랑할 뿐... 그것은‘조건 없는 사랑’이다.
높은 의로움(上義)을 지닌 사람은 ‘무엇이 의로움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행위가 의롭기를 바라며, 또 의롭게 행동한다.(上義爲之 而有以爲)
높은 의로움(上義)에는 ‘정의(正義)와 불의(不義)에 대한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
그러나 '가치판단'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높은 의로움(上義)은 인위적인(有爲, 人爲)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의(禮)란 주고 받는 것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예상왕래(禮尙往來)’, '예(禮)는 오고 가는 것을 중요시 한다’.
따라서 예의(禮)란 대등하게 왕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례를 당했다면서 팔뚝을 걷어 부치고 덤벼들게 되는 것이다.(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Tip!-‘부예자 충신지박 이난지수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와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대체로 예의(禮)라는 것은(夫禮者) 인위적인 것이며, 깨지기 쉬운 것이다.
예의(禮)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거나(忠)
믿는 일(信)과는 거리가 멀다.(忠信之薄)
세상에 충실함(忠)과 믿음(信, 신의)이 사라지니,(忠信之薄)
예의가 충(忠)과 신(信)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예의에 맞지 않으면 시비가 일어나고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예의(禮)는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시작(首, 머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而亂之首)
‘전식자(前識者)’는 ‘일을 앞서 아는 것, 남보다 먼저 아는 것,
선지자, 선각자, 똑똑하다는 사람’등을 말한다.
또한 '화(華)’는 여기서‘꽃, 겉치레, 꾸밈, 말단’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화려한 꽃(華)은 자신을 감추기 보다는 드러내는 존재이다.
뭘 좀 안다는 사람(前識者)은 꽃처럼 자신이 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만,(道之華)
이것은 바보가 되는 시작이다.
즉, 어리석음의 시작(始)이다.(而愚之始)
반대로 큰 道는 나무의 뿌리(根, 實)와 같아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지 만물의 근원(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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