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물의 방(老莊)(공개)/장자 내편(莊子內篇)

장자이야기 내편(內篇) 4-12.인간세(人間世):공자(孔子)가 초(楚)나라에 갔을 때(孔子適楚)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8. 2. 28.








장자(莊子)이야기 내편(內篇) 4-12.인간세(人間世)

:공자(孔子)가 초(楚)나라에 갔을 때(孔子適楚)



(참고문헌: 1.『장자(莊子)』, 김달진 옮김, 문학동네

 2.『장자(莊子) 강의』, 전호근 옮김, 동녁 

3.『장자(莊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4.『장자 내편(莊子 內篇)』, 이기동, 동인서원)





공자(孔子)가 초(楚)나라에 갔을 때(孔子適楚)

초(楚)나라의 미치광이 접여(接輿)가(楚狂接輿)

공자(孔子)가 묵고 있던 집 문 앞에서 노닐며 노래를 불렀다.(遊其門曰)


"봉황이여! 봉황이여!(鳳兮鳳兮)

시들어가는 德을 어찌하겠는가?(何如德之衰也)

오는 세상 기대할 수 없고(來世不可待)

가는 세상 돌이킬 수 없구나.(往世不可追也)

천하에 道가 있으면(天下有道)

聖人은 나아가 공적을 이루고,(聖人成焉)

천하에 道가 없으면(天下無道)

聖人은 그저 살아가기만 한다네.(聖人生焉)

지금 같은 때에는(方今之時)

겨우 형벌을 면하기도 바쁘구나.(僅免刑焉)

복은 깃털보다 가벼워도(福輕乎羽)

잡을 줄을 모르고(莫之知哉) 

재앙은 땅보다 무거워도(禍重乎地)

피할 줄을 모르네(莫之知避)

아서라! 그만 두어라!(已乎已乎)

도덕으로 세상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을.(臨人以德)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殆乎殆乎)

땅에 금을 긋고 달리는 것이.(劃地而趨)

가시풀이여! 가시풀이여!(迷陽迷陽)

내 가는 길을 막지 못하리라.(無傷吾行)

나의 길은 비틀비틀 물러났다 구부러져 돌아가지만(吾行却曲)

내 발을 다치지 못하리라.(無傷吾足)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며 (山木自寇也)

등잔불은 스스로를 태우네.(膏火子煎也)

계피는 먹을 수 있기에 베어지고(桂可食 故伐之)

옻은 쓸 수 있기에 껍질이 벗겨지네.(漆可用 故割之)

사람들은 모두 '쓸모있음의 쓰임(有用之用)'만을 알고(人皆知有用之用)

'쓸모없음의 쓰임(無用之用)'은 알지 못하는구나!"(而莫知無用之用也)




※'미치광이 접여(狂接輿)'는 초(楚)나라의 은자(隱者)다. 그의 실제 이름은 알 수 없다.

접여(接輿)는 '미치광이 같은 행색으로 공자의 수레에 접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장자(莊子)속 에 나오는 '은자(隱者)'들은 모두 도가(道家)의 수행자들이다.


그들은 '무위자연의 道'를 실천하며 '자연의 세계, 본래의 세계'에 머물러 살며

세상의 일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가(道家)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세상에 무위자연의 道가 있을 때'는... 세상의 道과 聖人의 삶이 일치하기 때문에..

 聖人은 세상에 나아가 주어진 공적(사명)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접여(接輿)가 볼 때에 그러한 道의 시대, 황금시대는 일찌기 끝났다. 





※ 그가 보기에.. 지금의 세상은 이미 道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접여(接輿)는 '오는 세상(來世)', 미래를 기대할 수가 없고,

'가는 세상(往世)', 과거의 일들은 되돌이킬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方今之時)'에서..  聖人은 다만 형벌을 피하고 자기 생명을 지키면 다행인 것이다.  


이렇듯 접여(接輿)의 관점은 '염세적'이다.





※ '봉()'은 봉황새다.

봉황새는 '聖人이 세상을 다스릴 때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다.

그래서 봉황은 聖人이 다스리는 '태평성세(太平聖歲)'를 의미하며, 동시에 '聖人 자신'을 상징한다.

  


그런데 접여(接輿)는 공자(孔子)를 聖人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자를 '봉황새여!()'라고 부른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공자여, 공자여)

이미 道가 사라지고 德이 쇠약해진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어찌하려고 합니까?

당신의 행동은 너무나 무모합니다."



도가(道家, 접여)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 무위자연의 道가 사라지면'...

聖人은 그런 '천시(天時)'를 보고서 물러나 은자가 되어 숨어서 산다.

그는 오직 '양생(養生)의 道'를 닦는 수행자로서 살아갈 뿐이다.




※ 접여(接輿, 道家)는 여행 중인 공자(孔子)가 들을 수 있도록..

공자가 머무는 집 앞에서 미치광이 흉내를 내며 큰 소리로 노래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자연과 생명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복은

깃털처럼 기쁘고 가벼워도 잡을 줄을 모르네.


욕망을 좇아 성공만을 추구하며 서로 다투고 죽이는 재앙은

땅덩어리를 등에 짊어진 듯 무거운 고통인데도 오히려 피할 줄을 모르네.


공자여, 그만 두시오. 

그런 사람들에게 도덕(道德)의 가치를 세워 가르치려는 일을!

당신은 땅에 금을 긋고 달리듯이, 정명(正命)을 말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비록 정치(政治)를 바로잡으려고 하지만,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오."   





 " (세상에 널린) 무성한 가시풀이여, 가시풀이여, (험난한 세상이여)

너는 내가 가는 길, 나의 道를 막지 못하리라.(無傷吾行)

나의 발걸음, 나의 道는 너(가시나무)를 피해

구불구불 구부러져 돌아가고, 물러서고 또 나아가지만,

내 몸과 내 발을, 내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으리라.(無傷吾足)"



자연적인 길, 자연의 길은 항상 곧고 평평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산길, 꼬부랑 고개처럼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또한 그 길에는 무성한 가시덤불과 뾰족한 돌뿌리와 천길 절벽과 낭떠러지가 있다.


그런 험한 길을 힘을 빼고 가볍게 춤추듯이 걷는 사람,

비틀비틀 취권(醉拳)을 하듯, 나아갔다 물러섰다를 자유자재로 하며

노래하며 걸어가는 사람의 발은 쉽게 다치지 않는다.



접여(接輿)는 그렇게 노래하며 훌쩍 떠나갔다.


공자(孔子)가 그 노래를 듣고서 서둘러 그를 보려고 뛰어나왔지만,

이미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누구도 그의 이름과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 공자(孔子)는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많은 위정자(爲政者)와 권력자, 은자(隱者)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자(孔子)를 가리켜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이라고 말했다.



공자(孔子)는 세상이 험하다고 해서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자(孔子)를 비웃고 비판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따르고 존경했다.

그 시대에 공자(孔子)는 '세상의 스승'이며, 聖人이었다.



그 당시 걸닉(桀溺)이라는 도가(道家)의 은자(隱者)가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천하의 무도함이 도도히 흘러가는 탁류와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혼란합니다.)

과연 누가 이 흐름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孔子)가 대답했다.


"천하에 道가 있다면 내가 바꾸려하지 않을 것입니다.(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천하에 道가 없기 때문에 나는 道를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또한 타락한 정치를 바꾸어 혼란한 세상을 안정시키는 일을 나는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孔子)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접여(接輿)는 공자(孔子)를 비판하면서도

그를 '봉황새(鳳, 聖人)'라고 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