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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방(老莊)/도덕경(道德經)

노자이야기- 67장. 세상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天下皆謂我)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6. 10. 10.



수선화





노자이야기- 67장. 세상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天下皆謂我)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天下 皆謂我 大道 似不肖 夫唯大 故 似不肖 若肖 久矣其細也夫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慈故 能勇 儉故 能廣 不敢爲天下先故 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 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求之 以慈衛之

 

천하 개위아 대도 사불초 부유대 고 사불초 약초 구의기세야부 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자고 능용 검고 능광 불감위천하선고 능성기장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부자 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세상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天下 皆謂我)

“道가 커서 비슷하게 닮을 수가 없다”고 한다.(大道 似不肖)

오직 크기 때문에(夫唯大)

비슷하게 닮을 수 없으니,(故 似不肖)

만약 道와 닮으면, 오래도록 미세할 뿐이다.(若肖 久矣其細也夫)

 

내게‘세 가지 보배(三寶)’가 있어서(我有三寶)

몸에 소중하게 지녀왔다.(持而保之)

첫째는‘자애(慈)’요,(一曰慈)

둘째는‘검약(儉)’이요,(二曰儉)

셋째는 ‘감히 천하보다 앞서지 않는 것(不敢爲天下先)’이다.(三曰不敢爲天下先)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慈故 能勇)

검약하기 때문에 넓으며,(儉故 能廣)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기 때문에(不敢爲天下先故)

유능한 인재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能成器長)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 용감하려고만 하고,(舍慈且勇)

검약함을 버리고 넓으려고만 하고,(舍儉且廣)

겸손함을 버리고 남보다 앞서려고만 한다면,(舍後且先)

죽게 될 것이다.(死矣)

 

무릇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기고,(夫慈 以戰則勝)

자애로움으로 지키면 굳건해진다.(以守則固)

하늘이 장차 세상을 구원할 때에 자애로움으로 지켜주신다.(天將求之 以慈衛之)

 

 





 

  

  

※Tip!-‘대도 사불초 大道 似不肖’와

‘약초 구의기세야부 若肖 久矣其細也夫’

 

 

    

 "세상 사람들이 나(老子)에게 말하기를(天下 皆謂我)

道가 너무 커서(大道)

(道를 따르려고 하지만)..

비슷하게나마 道의 근처에도 갈 수가 없다,(似不肖)

道를 닮을 수가 없다, 

道를 깨달을 수가 없다(似不肖) 고 한다.”

 

    

 

道는 오직 크기 때문에(夫唯大)..

사람의 말로는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한하게 큰 道에 사람이 감히 접근할 수가 없으니,

사람이 비슷하게나마 닮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불초(不肖)’는 본래‘부모와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자식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훗날에 와서 ‘못나다, 어리석다’는 뜻으로 발전했다.

    

      

  

“만약 큰 道를 닮을 수 있다면(若肖),

즉 큰 道를 깨달을 수 있다면..

오히려 오래도록 道가 미세하다고 느낄 것이다(久矣其細也夫).”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道는 크게만 느껴진다.

道가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道를 따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다. 바보 같이 느껴진다.(夫唯大 故 似不肖)



그러나 '道가 크다' 혹은 '道가 작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道를 표현하는 하나의‘방편’일 뿐..

말이란 하나의 '그릇(器)'일뿐..


  

깨달으면 더 이상 '道가 크다' 혹은 '道가 작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道 자체에 머무를 뿐이다.

그저 道를 실천(行)할 뿐이다.

  


그러므로 '道가 너무 커서 닮을 수 없다’는 말은

‘道가 너무 작아서 닮을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된다.

 

     

 

   



 

 

※Tip!-‘아유삼보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我有三寶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자기 마음에 지녀서 소중하게 보전해야 할

‘세 가지 보배(三寶)’가 있다.(我有三寶)

 

첫째는 자애로움(慈)이고,(一曰慈)

둘째는 검약함(儉)이고,(二曰儉)

셋째는 감히 천하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다(三曰不敢爲天下先).”

 

 

 

여기서 ‘자(慈)’는 자애로움, 사랑을 말한다.


     대개 유가(儒家)에서 '자애로움(慈)’은.. 어버이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어버이의 사랑이다.


그런데 노자(老子)의‘자애로움(慈)’은.. ‘道의 다른 모습'이다.

 ‘자애로움(慈)’은‘인(仁, 어짊)의 근본’이다.

 

 

노자(老子)의 첫 번째 보물인‘자애로움(慈, 사랑)’은..

'만물의 어머니인 道'가 마치 젖먹이를 기르듯이..

만물을 감싸안고 덮어 기르되 빠뜨리는 것이 없다.

    

 

'道의 사랑(慈)'은 하늘처럼 넓고 바늘 끝보다 더 세밀하다.

      

숯불이 적도에서도 뜨겁고 북극의 얼음벌판에서도 뜨겁듯이,

‘道의 사랑(慈)’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사랑'이다.

그것은 환경이나 조건에 매이지 않는.

그래서 '조건이 없는 사랑'이다.

 

    

 

“착한 사람을 내가 착하게 대하고,(善者 吾善之)

착하지 못한 사람을 내가 또한 착하게 대하니,(不善者 吾亦善之)

德이 오직 착하기 때문이다.(德善)”

(『노자(老子)』, 49장에서)

 

 

 

노자(老子)에게 있어 道를 따른다는 것은..

 

먼저 '무한한 자애로움(慈)'을 실천하는 것이며(一曰慈),

'道의 사랑(慈)'을 가슴에 품고 만물(萬物)을 대하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두 번째 보물은‘검약함(儉)’이다.(二曰儉)”

 

 

‘검(儉)’은 검약함, 검소함이니, 아끼는 것이며,

'있으면서 쓰지 않는 것(嗇)’이다.


 

  정신적인 면의 검약은 ‘절제와 겸손’이며,

물질적인 면의 검약은 ‘검소한 생활, 소박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治人事天)

‘아끼는 것(嗇)’만한 것이 없다.(莫若嗇)

오직 아끼기 때문에 일찍 좇는다.(夫唯嗇 是以早服)”

(『노자(老子)』, 59장에서)

 

 

      


    



 

또한 “노자(老子)의 세 번째 보물은

‘감히 천하보다 앞서지 않는 것(不敢爲天下先)’이다.(三曰不敢爲天下先)”

 

 

 

노자(老子)에게 있어 '道를 따른다'는 것은..

감히 세상보다 앞서서 세상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보다 뒤에 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바른 길로 잘 이끌어 가는 것이다.

 

 

 

예수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였다.

 

“식탁에 앉은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 중에 어느 편이 더 높은 사람이냐?

높은 사람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와 있다.”

 

“나는 섬기러 왔지,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

 

 

 

그러므로 노자(老子)의 시선으로 볼 때에..

오늘날 무한경쟁시대의‘1등 제일주의’와‘선착순의 논리’는 바른 道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대자연의 道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잠시 번성하는 듯 해도 결국 일찍 끝나게 된다. 일찍 죽는다.(不道 早已)

 

 





 

  

  

그렇다면 노자(老子)의 ‘세가지 보물(三寶)’은 어떤 힘을 갖고 있는가?

 

    

먼저,“자애롭기 때문에(사랑하기 때문에) 용감할 수가 있다.(慈故 能勇)”

 

 

용감하다는 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인데,

사랑(慈)은 그 두려움을 없애준다.

사랑(慈)의 힘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다음으로,“검약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가 있고

충분히 생활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마음에 아쉬운 것,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따라서 그 마음이 넓고 자유롭다.”(儉故 能廣)

 

 

 

그러므로,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慈故 能勇)

검약하기 때문에 넓으며,(儉故 能廣)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기 때문에(不敢爲天下先故)

유능한 인재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能成器長)”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자애로움(慈)없이 용감하기만 하고,(舍慈且勇)

검약할 줄 모르면서 넓고 자유롭고자만 하고,(舍儉且廣)

물러설 줄 모르면서 남보다 앞서려고만 (경쟁)한다면,(舍後且先)..

 

(그는) 온전한 삶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

죽게 된다.(死矣)”

 

 





 

  

  

※Tip!-‘부자 이전즉승 이수즉고 夫慈 以戰則勝 以守則固’와

‘천장구지 이자위지 天將求之 以慈衛之’

 

 

 

자애로움(慈, 사랑)은 道에서 나오는 것이니,

사랑은 나약한 것 같지만,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내는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氣)이며,

생명의 원리(性)이다.

 

 

그러므로 道를 따르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첫 번째 보물은..

가장 큰 무기는 자애로움(慈, 사랑)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할 때,

(현실적으로 세상에는 불가피한 싸움이란 게 있다..) 

상대가 쳐들어와서 불가피한 전쟁을 치루어야 할 때,


자애로움(慈)으로 싸워서 지킨다면 아무도 깨뜨릴 수가 없다.

(夫慈 以戰則勝 以守則固)

 

왜냐하면 자애로움(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慈)을 지닌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당해낼 수 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애로움(慈)을 지킨다면

道는 더욱 더 굳건해지며,

하늘이 자애로움(慈)으로 그 사람을 지켜주신다.(天將求之 以慈衛之)

 

 

 

그러므로, “무릇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기고,(夫慈 以戰則勝)

자애로움으로 지키면 굳건해진다.(以守則固)

하늘이 장차 세상을 구원할 때 (무엇으로 구원하는가)

사랑으로, 자애로움으로 (세상을) 지켜주신다.(天將求之 以慈衛之)”

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