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 8곡병, 1776년,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139호)
단군 할아버지의 편지
_ 2천 년 전의 약속
(출처- 일지 이승헌, 『한원리 강천집』, 비매품)
이 글은 지난 단기 4330년(서기 1997년) 3월 9일에 발표된
「단군 할아버지의 편지」로,
종종「2천 년 전의 약속」이라고도 말해집니다.
나의 스승인 一指가 깊은 수련 중에 마지막 단군인 47세 고열가古列加를 만나서
그의 메세지를 듣고, 제자들에게 전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도단학仙道丹學 일지문중一指門衆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전해준 단군 할아버지의 심정이지요...
(군선도群仙圖에서_ 선녀들
복숭아와 연꽃을 든 하선고,
영지와 꽃바구니를 든 마고 또는 남채화)
이 편지 속의 화자話者는 마지막 단군인 47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며,
B.C 238년에, 약 2,096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단군 조선의 문을
당신 손으로 닫아야 했던(閉關, 폐관) '통한의 단군'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후손들에게 대한 염려와 아픔과 사랑이 깊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다는 복숭아와 복숭아꽃은 선도仙道의 대표적인 상징물)
물론 역사적 검증과 평가는 다양하겠으나, 그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한국도교, 즉 선도단학仙道丹學의 관점을 유지하겠습니다.
현대 단학(丹學), 즉 선도(仙道, 신선도)에서는
단군 조선이 외부의 적(외국)에 의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내부의 분열과 타락이 극심하여...
더 이상 '법(天化천화의 법)을 전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고열가 단군이 '천화의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나라의 문을 닫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폐관(閉關)했다'고 말합니다.
(군선도群仙圖에서-흰 노새를 거꾸로 타고 가는 장과로,
딱따기를 들고 있는 조국구,
어고간자를 든 한상자)
그 후, 고열가 단군은 그를 따르는 수제자들과 함께 구월산으로 들어가
'신선(神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고열가 단군을 따라 가지 않았던 나머지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 대중의 스승이 되었는데,
'도사(道師, 도교의 선생)'라고 불리우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 수준의 제자들이 아니었으므로
이미 천법은 끊어지고, 주로 단약이나 양생술, 연단술 같은 술법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道)와 술(術)은 차원이 아주 다른 것입니다.
흔히 중국 도교를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신선술(神仙術)'이라 말하고,
한국 도교를 천화의 법이 내려오는 '신선도(神仙道)'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국도교에는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라는 경전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군 조선의 폐관 이후, 세상에는 천화天化의 법이 끊어져
사람들은 오로지 장생불사長生不死,
즉 웰빙well-being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고열가 단군과 도道와 술術의 차이에 대해서는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
오늘 서기 2015년(단기 4348년) 9월의 어느 가을날,
단군 조선의 폐관 이후, 어느 덧 2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단군 할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며
마지막 단군 고열가의 마음을 느껴보고
「2천 년 전의 약속」이라는 그 분의 예언에도 귀 기울여보겠습니다."
(군선도群仙圖에서_ 외뿔소를 타고 도덕경을 들고 있는 노자,
복숭아를 들고 있는 동방삭, 두건을 쓴 종리권,
두루마리와 붓을 들고 있는 문창, 호리병을 들고 있는 철괴리)
단군 할아버지의 편지
"천 년의 모진 풍파를 견디어 온 나의 자손들아,
너희들이 인내하여 참고 살아 온 기나긴 세월은 이제 끝나는 운세가 되었구나.
순박하고 마음씨 착한, 그리고 싸움을 멀리 하고 정답게 살아가는 나의 아이들아,
너희가 받은 고통이 오히려 너희를 성장시키어 세계 민족 중에서 어른이 되었구나.
그렇단다. 너희는 이제 어른이란다.
어른이 무엇이냐. 얼이 큰 사람이란다.
큰 얼을 가진 사람은 조화로운 사람이다.
스스로도 조화로워 건강하고 밝은 마음을 지녔다.
어른은 나와 민족과 인류를 키우고 걱정하는 사람이란다.
우리 말 중에서 제일 좋은 말이 무엇이더냐. 어른스럽다는 말이 아니냐.
너희는 어른이 되었느니라.
땅에서 사는 너희에게도 시간이 있듯이, 하늘에도 시간이 있단다.
이것을 천시(天時)라고 한다.
천시에 따라서 기운이 돌고 그에 따라 국가마다 운(運, 國運)이 달라지느니라.
너희가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은 천시 때문이니라.
(단원 김홍도의 운상신선도雲上神仙圖
구름 위로 암소를 타고 가는 신선과 선동들)
내가 너희에게 나타난 것은 천시(天時)를 알려주고자 함 때문이다.
민족이 어렵고 험한 지경에 처해 있어도 이것은 천시를 몰랐던 무지 때문이었다.
이제는 실수를 범하여서는 안 되느니라.
너희는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너희에게 더 이상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으나,
이대로 두다가는 큰 일이 나겠기에 미리 너희를 꾸짖는다.
너희는 어찌 한(桓, 一, 大, 韓)민족임을 잊고 사는가.
너희 피는 누구의 피더냐.
너희 속에 흐르는 피(血)는 핏줄도 조상도 없는 것이냐.
너희 피가 너희 몸 속에서 힘차게 박동하며 활기를 주는데
너희가 나를 무엇이라고 하더냐.
곰의 아들 단군이라고 부르는 얼빠진 자들이 누구이더냐.
내 땅 내 조상님들이 살았던 이 땅에서 숨 쉬는 나의 아들들이 그리고 딸들이
너희의 할아버지가 존재하여 나라를 다스렸는데도
신화로 만들고 말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말하는 신화의 그 때에, 천시에 따라서 기운이 바뀌고,
나의 백성들은 힘을 잃게 되었으며,
적들은 국경을 공격하고 백성을 끌고 갔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선인취생도松下仙人吹笙圖)
오랫동안의 태평성대가 백성들에게 게으름과 욕심만을 키워 놓았다.
내가 왕으로 꾸짖고 다스려왔으나 백성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눈 앞의 이익만 두고 싸움만 벌였다.
나를 곰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나의 핏줄들아,
너희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망해갔었느니라.
웅대한 기상과 강대한 활을 들고 대륙을 개척하고 넓혔던 너희 할아버지였느니라.
그 때 중국인들은 힘이 없었기에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으나,
국가가 내분이 일어나게 되어 위험스러운 사건들이 많게 되었다.
대륙 개척시기에는 서로 협동하면서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더욱이 나라에는 예로부터 내려온 경전(「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이 있어서
정신을 크게 깨우치는 공부와 수련을 했었다.
광활한 대지는 끝도 보이지 않았는데
기운은 거칠어 어른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였다.
낮에는 말고삐를 당겨 땅을 치며 북소리를 울렸고,
해가 황혼에 있게 되면 모닥불이 타는 주위로 앉았다.
큰 어른의 말씀은 큰 깨우침을 열어 무리들은 하늘에 제사하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큰 어른을 우리는 한웅 천황이라고 불렀다.
한웅 천황은 큰 원을 그리시고 하늘에 대한 강론을 펴시니,
강론을 듣고자 모이는 무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나라에 내려오는 경전이 있으니
「천부경」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의 모습을 나타낸 글이요,
너희가 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하늘의 가르침이니라.
「천부경」에 의하여 너희에게 하늘이 열릴 것이요,
너희의 삶이 되어질 바를 알게 하여 줄 것이다.
이로써 무리들이 어른의 가르침을 따르니,
무릇 수련치 않는 자가 없었고(신선도神仙道),
그 수련을 하는 사람마다 병을 앓는 자도 없게 되었고,
온 나라에 효자와 충신이 많았다.
그러함이 오래더니, 국토를 정하고 삶이 순탄하게 되었다.
(천부경)
그러한 시대가 바야흐로 수 천 년이 지나고
수련치 않는 자가 많게 되었다.
정신은 썩어 갔으며 육체는 병들어 갔다.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도 정신을 잃으면서도 백성들은 재물을 탐하여 인정이 말라갔다.
나라 밖의 적들은 호시탐탐 엿보는데 나라는 시끄럽고 분열되었다.
(단원 김홍도의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단원 김홍도의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_수壽노인)
위대한 성인을 모신 나라가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어두운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자손들은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어리석고 욕심만 키우며
거짓은 교묘해졌다.
그러한 때에 왕으로서 가르침을 폐(閉)하고 천시(天時)를 잃으니,
국운이 2천 년 후에나 돌아올 것을 알았다.
천운이 돌아 서쪽으로 향했으니,
준비도 못한 자손들은 그 고생이 얼마나 크겠는가.
곳곳에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공사(工事)는 보아 놓았으나,
그래도 고생은 심하리라.
(연담 김명국의 수로예구
수壽노인이 거북이를 끌고 가다. 별자리 28수二十八宿의 우두머리
이 노인은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는 보이지 않다가 천하가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오면 보인다고 한다. )
(단원 김홍도의 검선관란劍仙觀瀾
검을 든 신선, 여동빈이 동정호에서 물결을 바라보다)
근근히 2천 년을 버티어 이제서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늘이 내린 말씀을 지닌 하나님(한님, 한인)의 자손인
한민족의 얼을 다시 세우리라.
이제야 너희는 그 때에 도착하였으니,
너희는 무엇을 하려 하느냐.
너희 할아버지가 범하셨던 실수를 또 하려 하느냐.
너희 아버지가 범하였던 실수를 너희도 또 하려 하느냐.
한웅 천황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물질과 재물에 눈이 멀어 정신과 얼은 팽개치려 하느냐.
(단원 김홍도_ 남해관음도南海觀音圖)
저 높으신 곳에서 할아버지 기운이 너희에게 이르나니,
너희는 마음을 정결히 씻고 뜻을 받들어
성실과 정성을 다하라.
너희는 기운을 타고 우주를 떠도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니라.
(너희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다.)
너희 몸 속에 탁기가 많아 병으로 고생이 많으니
수련하여 그 기운을 맑게 하라.
너희가 하는 단학이라는 수련법은 내가 하늘에서 알려준 심신수련법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 많다.
너희는 목숨을 바쳐 실천하라."
(단기 4330년, 서기 1997년, 3월 9일에)
(단원 김홍도의 선인채약도仙人采藥圖)
(
Tip!- 출처: <우리역사바로알기 시민연대>, 단군조선의 폐관
<신화 위키>, 고열가 단군
후(後)단군시대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커지게 된 장수將帥들이 차츰 말을 잘 안 듣게 되었고,
개인적인 욕망에 따라 이합집산하게 되었다.
말기에는 실제로 반란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한개韓介가 수유須臾의 군대를 이끌고 자칭 단제檀帝라 칭하며 수도를 점령하였고,
상장군이었던 고열가古列加가 이 난亂을 평정하였다.
단제께서 붕어하셨는데 후사가 없으매.
상장군 고열가古列加가 단군 물리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추대를 받아서 즉위하였다)
(연담 김명국_ 비급전관祕笈傳關)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 단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셨다고 기록은 말한다.
"단제(고열가)께서는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셨다."
이에 오가五加가 집단지도체제로서 연정聯政을 하게 되는데, 6년 동안 이어졌다.
(단원 김홍도의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에서 1~4폭
서왕모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은 신선들이 파도를 건너가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이미 성인(聖人)이 실제로 정치할 수 있는 시대-천시(天時)는 끝난 것이었다.
너무나 욕심으로 어지러운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 이치대로 하자면 그러한 시기는 강력하고 세속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고열가 단제께서는 천시를 보신 후 때가 지났음을 알고,
영적인 눈으로 새로운 천시가 이천 년 후에나 이 민족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보셨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시고는 "너무나 타락해서 고귀한 법을 전수해 줄 수 없다"고 하신 후
고열가 단제께서는 절망으로 통한의 가슴을 안은 채,
2천년 신선神仙의 역사를 폐관閉關하시고 구월산(혹은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셨다.(B.C. 238년 3월)
하늘의 법이 공식적으로 끊어진 이 날은 민족 최대 통한의 날로써,
이후로는 천화한 사람이 없었다.
(단원 김홍도의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에서 5~8폭)
본래 단군조선의 방대한 강역은 후기에 들어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중 진조선은 단군의 직할통치 구역이었다.
번조선·막조선은 비왕을 두어 간접통치 했었다.
1. 진조선은 B.C. 238년 47대 고열가 단제의 폐관으로 문을 닫았다.
2. 번조선은 B.C. 194년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의 책략에 멸망했다. (위만조선의 수립)
이 때 마지막 42대 번조선의 왕 기준箕準은 배를 타고 한반도로 피신하여
목지국의 금마군으로 가서 마한이란 나라를 세웠다.(백제에 흡수된 직산마한)
또 제가(諸家, 五加)들은 한반도의 월지로 건너가 나라를 세워 익산 마한이 되었다.
3. 막조선은 B.C. 238년 35대 비왕 맹남을 마지막으로 진조선과 함께 막을 내렸다.
4. 위만조선은 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의 정권을 찬탈한 위만衛滿으로부터 3대 우거까지를 말하며
내부 분열 끝에 한나라에 항복했다. (B.C. 108년)
5. B.C. 239년 3월 9일에 해모수解慕漱가 웅심산熊心山에서 내려왔다.
그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똟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 했다. 나이 23세였다.
옛 도읍지 부여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시니, 북부여北扶餘라 했다.
해모수는 고구려의 시조 고추모, 주몽의 아버지다.)
(단원 김홍도의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8폭 병풍, 177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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