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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詩,노래하는 웅녀

김시습- 나의 삶(我生)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5. 8. 7.

 

 

 

 

(안견, 몽유도원도)

 

 

 

 

어제 저녁부터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선생님의 『김시습 평전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김시습이 시문을 지을 때는 청한(寒), 동봉(峰), 설잠(岑) 같은 호를 주로 썼고,

매월당은 당호(거처하는 집이나 서재에 붙이는 이름)라고 하네요..

 

김시습은 유교나 불교 뿐 아니라,

한국 도교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그는

조숙한 천재성과 절의(節義)와 광기(狂氣)의 아이콘이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금오신화』가 '조선의 도교 소설'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베개) 

 

 

 

 

 

나의 삶(我生)

 

 

김시습

 

 

 

태어나 사람 꼴 취하였거늘

 

어찌해서 사람 도리 못다 하였나.

 

젊어선 명리를 일삼았고

 

장년이 되어선 자빠지고 넘어졌네.

 

고요히 생각하면 부끄러운 걸

 

진작에 깨닫지 못하였다니.

 

후회해도 지난 일을 돌이킬 수 없기에

 

잠 못 이루고 가슴을 방아 찧듯 쳐댄다.

 

충도 효도 못 이루었거늘

 

이 밖에 또 무엇을 구하고 찾으랴.

 

살아서는 하나의 죄인

 

죽어서는 궁귀가 되리라만

 

헛된 이름 또 일어나서

 

돌아보면 번뇌만 더하누나.

 

나 죽은 뒤 내 무덤에 표할 적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준다면

 

나의 마음 잘 이해했다 할 것이니

 

품은 뜻을 천 년 뒤에 알아주리.

 

 

 

 

 

...... 김시습은 50세 이후 양양의 설악에 있을 때 나의 삶(我生)이라는 시를 지어 적어

자신의 생애를 스스로 요약했다.

묘표(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표지)를 대신할 만한 시이다.

 

 

김시습은 충과 효를 다하지 못한 자신을 죄인이라고 했으며,

죽어서는 궁귀(鬼)가 되리라고 하였다.

궁귀는 가난을 가져오는 귀신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를 바꾸어 쓴 말인지도 모른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원한 맺힌 여인이 궁귀가 된다고도 하였다.

기갈(飢渴)의 고통을 안고 사는 귀신, 김시습은 자신이 그런 귀신이 되리라고 하였다.

 

 

그가 기갈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은 늘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공부했던 왕도정치의 이상을 결코 실현할 수 없었으며,

모든 생명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사는 대동(大同) 사회도 건립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똑똑히 알면서도 그런 정치와 사회를 꿈꾸었기에

그는 자신의 묘표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달라고 하였다.

 

 

 

(출처-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베개) 

 

 

 

 

 

(고구려 집안 고분 벽화- 해의 신과 달의 신)

 

(삼족오와 신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