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산수유)
'바람의 방(공개) > 詩,노래하는 웅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0) | 2015.12.16 |
---|---|
황지우- 소나무에 대한 예배 (0) | 2015.12.14 |
곽재구- 사평역에서 (0) | 2015.12.09 |
서정주- 동천冬天 (0) | 2015.12.07 |
함민복- 서울역 그 식당 (0) | 201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