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바람의 방 > 詩,노래하는 웅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0) | 2018.01.16 |
---|---|
문정희- 겨울일기 (0) | 2018.01.15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0) | 2018.01.08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0) | 2017.12.28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0) | 2017.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