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별(新婚別, 신혼의 이별)
두보(杜甫, 712년~770년, 당나라 시인)
이원섭 옮김, 문태준 해설
토사(兎絲)가 쑥과 삼에 엉킨다 해도
그 덩굴 길게는 못 뻗으려니.
출정(出征)하는 병사에 딸을 준다면
길가에 버림만도 아예 못하리.
머리 얹어 당신의 아내 되고도
그 침상 덥혀 볼 틈조차 없이
저녁에 잔치하여 아침의 이별
어찌 너무나 황망하지 않으랴.
비록 먼 길은 아니라 해도
변방을 지키려 하양(河陽)에 가시니
이 몸 신분 아직도 분명찮으매
그 어찌 시부모님 찾아뵈오리?
우리 양친 이 몸을 기르실 적에
밤낮으로 규중(閨中)에 있게 하시고,
딸이라 시집을 보내실 때는
닭과 개도 데리고 가게 하심을!
임은 이제 사지(死地)로 향해 가시니
터지려는 이 가슴 어떻다 하랴.
임을 따라 나설까 생각 있어도
형세 또한 너무나 촉박한지라.
새로 장가드심을 생각 마시고
오로지 군대 일에 열중하시길!
나 같은 부녀자가 군에 있다면
도리어 사기(兵氣)를 해칠 것이리.
슬프기는 가난한 집 태어난 이 몸
가까스로 마련한 한 벌 비단옷!
그러나 다시 그 옷 걸치지 않고
임 앞에서 화장도 지금 지우리.
우러러 온갖 새들 나는 것 보면
크건 작건 쌍을 지어 날아가건만,
사람에는 뜻 같잖은 일이 많아서
임을 멀리 바라보고 있게 됐도다.
(*토사(兎絲): 다른 식물에 의지하여 생장하는 덩굴 식물의 일종.
여기서는 ‘결혼한 여자’를 비유함.)
*** 두보(杜甫)는 일생동안 전란(戰亂)과 기근(饑饉)과 극심한 곤궁 속에서 유랑생활로 떠돌았다.
그는 44세에 막내아들이 굶어죽는 슬픔을 겪었으며, 그 해에 '안녹산의 난(亂)'이 일어났다.
두보(杜甫)는 59세에 병든 몸으로 한 척의 배 위에서 불우하게 생애를 마감했다.
두보(杜甫)는 천하를 ‘공공(公共)의 것’으로 여기는..‘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시대'를 갈망했고,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사람과 병든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갈망했다.
그는 일생동안 시대의 고통을 목격하고 격분하면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노래했다.
두보(杜甫)의 시는 ‘본 것을 남김없이 썼다’고 하여
‘시로 역사를 썼다’는 뜻의 ‘시사(詩史)’라고 말해진다.
「신혼별(新婚別)」은 전쟁으로 인한 생이별의 아픔을 그린 시(詩)이며,
「수로별(垂老別)」, 「무가별(無家別)」과 함께 ‘삼별(三別)’ 중의 하나이다.
(두보 杜甫)
'바람의 방 > 詩,노래하는 웅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거이- 비파행(琵琶行, 비파의 노래) (0) | 2016.10.04 |
---|---|
백거이- 대주 (對酒 其二, 술잔을 앞에 놓고 2) (0) | 2016.09.30 |
신동엽- 그 사람에게 (0) | 2016.09.21 |
이상국- 선림원지(禪林院址)에 가서 (0) | 2016.09.17 |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0) | 201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