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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공개)/詩,노래하는 웅녀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by 하늘꽃별나무바람 2017. 4. 12.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긴 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