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 부석사(浮石寺)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있는 절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젊은 의상(義湘)은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해 신라를 떠나서
중국의 등주(登州)라는 어느 해안 지방의 신도 집에 며칠 간 머무르게 되었다.
이 때 그 집의 딸인 선묘(善妙)아가씨가 의상(義湘)을 흠모했다.
선묘(善妙)는 의상(義湘)의 제자가 되어
그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를 성취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원(願)을 세웠다.
그 후, 의상(義湘)은 중국 종남산(終南山)의 지엄(智儼)선사 밑에서 화엄학(華嚴學)을 공부하여 큰 성취를 이루었다.
의상(義湘)은 고국인 신라로 돌아가면서 잠시 선묘(善妙)의 집에 들러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급히 배에 올랐다.
(아마도 그 당시가 신라의 삼국통일 시기였으므로
국내 사정이 매우 복잡하여 급히 귀국을 서둘렀으리라.)
선묘(善妙)아가씨는 의상(義湘)에게 주고자 했던 법복과 집기를 넣은 상자를
바다에 던져서 의상(義湘)에게 전하고,
자신도 몸을 바다에 던져 용(龍)이 되어 의상(義湘)을 수호하겠다는 원(願)을 세웠다.
이 원(願)은 이루어졌다.
그 후, 용(龍)은 의상(義湘)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
그 땅에 살고 있던 도둑 500명 앞에 나타났다.
용(龍)은 자신의 몸을 커다란 바위로 변신시켜 '공중에 떠서 도둑들을 위협하니',
'부석(浮石, 공중에 떠 있는 바위)'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게 용(龍)은 도둑들을 위협하여 몰아내고
마침내 의상(義湘)이 절을 창건하는데 큰 도움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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