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悔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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