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이야기- 58장.어수룩하게 다스리면(其政 悶悶)
나팔꽃
노자이야기- 58장.어수룩하게 다스리면(其政 悶悶)
(출처 및 참고 문헌- 1. 대산 김석진, 수산 신성수, 『주역으로 보는 도덕경』, 대학서림
2. 이아무개 대담, 정리,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삼인
3.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其政 悶悶 其民 淳淳 其政 察察 其民 缺缺 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 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기정 민민 기민 순순 기정 찰찰 기민 결결 화혜 복지소의 복혜 화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시이 성인 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어수룩하게 다스리면(其政 悶悶)
백성이 순해지고,(其民 淳淳)
꼼꼼하게 다스리면(其政 察察)
백성이 이지러진다.(其民 缺缺)
재앙(禍)이여! 복(福)이 네게 기대어 있구나,(禍兮 福之所倚)
복(福)이여! 재앙(禍)이 네 속에 엎드려 있구나.(福兮 禍之所伏)
누가 그 끝을 알리요?(孰知其極)
그 바름이 없도다.(其無正)
바름은 기괴함으로 돌아오고,(正復爲奇)
착함은 요망함으로 돌아오니,(善復爲妖)
사람의 미혹됨이여, 참으로 오래되었구나.(人之迷 其日固久)
그래서 聖人은(是以 聖人)
방정하되 남을 쪼개지 않고,(方而不割)
깨끗하되 남을 상하지 않고,(廉而不劌)
곧되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되 빛을 내지 않는다.(光而不燿)
※Tip!-‘기정민민 기민순순 其政悶民 其民淳淳’
“어수룩하게 다스리면(其政 悶悶)
백성이 순해지고,(其民 淳淳)
꼼꼼하게 다스리면(其政 察察)
백성이 이지러진다.(其民 缺缺)”
‘민민(悶悶)’은 어둑어둑하다, 어수룩하다는 뜻이다.
‘순순(淳淳)’은 순박하다, 소박하다, 순하다는 뜻이다.
‘찰찰(察察)’은 꼼꼼하고 밝아서 빈틈없이 잘 살피는 것이다.
‘결결(缺缺)’은 모자라다, 이지러지다, 일그러지다의 뜻이다.
정치를 잘 하겠다고, 법령과 제도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빡빡하게 다스릴수록(其政 察察)..
백성의 삶은 고달퍼진다.(其民 缺缺)
그렇게 고달픈 백성은 법망을 피해가려고 잔꾀를 부리게 되고
더욱 더 교활해진다. 이것이‘정치의 악순환’이다.
반면에 정치를 어두운 듯, 어리석은 듯(其政 悶悶),
대범하게 무위(無爲)로써 다스려가면,
그 다스림이 느긋하고 넉넉해진다.
그러면 백성은 편안하기 때문에 오히려 순해진다. 순박해진다.(其民 淳淳)
‘정치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정치는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其民 淳淳)’이다.
그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다.
그럴 때에 정치가 백성을 사악하게 만들지 않으며,
백성이 '타고난 본성(本性)대로' 순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교화(敎化)하게 된다.
노자(老子)의 정치철학인 '무위이치(無爲而治)’는...
많이 다스리는 정부보다 적게 다스리는 정부가 낫고,
적게 다스리는 정부보다 안 다스리는 정부가 더 낫다고 보는 시각이다.
※Tip!-‘화혜 복지소의 禍兮 福之所倚'와 '복혜 화지소복 福兮 禍之所伏’
“재앙(禍)이여! 복(福)이 네게 의지하여 기대고(禍兮 福之所倚)
복(福)이여! 재앙(禍)이 네 속에 엎드려 있나니,(福兮 禍之所伏)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孰知其極)”
인생을 살다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처럼,
어디까지가 복(福)이고, 어디까지가 재앙(禍)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를 기쁘게 했던, 행복하게 했던 그 사람, 혹은 그 일 때문에
우리가 다시 슬퍼하게 되고, 불행해서 울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내게는 나를 절망시키고 불행하게 느꼈던 어떤 상황이..
오히려 나를 정화시키고, 깊이 있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좋은 환경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복과 재앙은 한 뿌리에 얽혀있으며,
둘 가운데 하나만 떼어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복을 잡으면 재앙도 함께 잡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내게는 복이 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는 재앙이 되고,
내게는 재앙이 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는 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복(福)을 구할 것도 없고, 재앙(禍)을 피할 것도 없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 즉 평상심(平常心)’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하여 복(福)도 아니고, 재앙(禍)도 아닌..
오직 ‘道와 하나되어’ 살아갈 뿐이다.
“(세상에는)‘이것이 바름(正)이다’라고 할 것이 없다.(其無正)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 바른 것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기괴한 것, 그릇된 것이 되기도 한다.(正復爲奇)
어떤 상황에서 좋은 것, 착한 것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나쁜 것, 요망한 것이 되기도 한다.(善復爲妖)”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것은 ‘정(正)’이다, 바른 것이다, 또는
이것은 ‘사(邪, 奇)’다, 그릇된 것이다, 하면서
구분을 짓고, 기준을 세워서 끝까지 고집하여 지키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잘못된 기준, 상대적인 기준, 편견’이 고착되어 간다.
사람이.. 정사(正邪), 선악(善惡), 미추(美醜), 귀천(貴賤) 같은
'상대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래서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 갇히게 될 때,
어리석다, 미혹(迷惑)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 사람이 '道의 뿌리(根本)'에 꿰뚫어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의 미혹됨이여, 참으로 오래되었구나.(人之迷 其日固久)”
라고 하는 것이다.
※Tip!-‘방이불할 方而不割’
聖人은, 道와 하나된 사람(是以 聖人)..
“자신은 반듯하고 방정하지만(方),
그 반듯함을 내세워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남이 반듯하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方而不割)”
여기서 ‘방(方)’은 반듯하다. 방정하다, 대범하다는 뜻이다.
‘할(割)’은 쪼개다, 나누다, 해치다의 뜻이니,
‘불할(不割)’은 쪼개지 않는다,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또한) 자신은 청렴하고 깨끗하지만(廉),
그 깨끗함을 내세워서 남의 허물을 들추어 상처내지 않는다.
(廉而不劌)”
“(또한) 자신은 옳고 곧지만(直),
자신의 곧음을 내세워서 남에게 방자하게 굴지 않는다.(直而不肆)”
“(또한) 자신은 밝은 지혜가 있지만,
밝은 척, 지혜로운 척 하지 않는다.(光而不燿)”
마치 햇빛이 밝게 빛나지만,
사람들은 해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과 같다.
낮이니까, 그냥 환한 줄로 알고만 산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집안이나 회사가 밝아졌을 때,
사람들이 누구 때문인지 모르는 경우가 간혹 있다.
좋아졌는데, 왜 좋아졌는지, 누구 때문에 좋아졌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聖人은
다만‘순박한 道의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릴 뿐이다.
오직‘무위이치(無爲而治)’할 뿐이다.
“그래서 聖人은(是以 聖人)
방정하되 남을 쪼개지 않고,(方而不割)
깨끗하되 남을 상하지 않고,(廉而不劌)
곧되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되 빛을 내지 않는다.(光而不燿)”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