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방/詩,노래하는 웅녀

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하늘꽃별나무바람 2016. 5. 18. 12:31









사과야 미안하다



정일근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 뜨던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

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